박세길 역사연구가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진출했다. 17곳 중 13곳을 석권했다. 조선일보가 6·4 지방선거 결과를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고 표현했을 만하다. 전멸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한 진보정당들과 묘하게 대비된다.

진보교육감의 진출은 보수 분열, 진보 단일화 구도 덕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진보교육감 진출에 이해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단적으로 진보교육감의 상표가 된 혁신학교의 경우 지정만 되면 주변 아파트 가격이 오를 정도로 학모들의 높은 호응이 있었다.

이제 진보교육감들은 함께 힘을 합쳐 한국의 교육현실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 정점에 입시와 등록금 부담 해소를 포함한 대학교육의 혁신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오랫동안 익혀 온 생각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진보교육감들의 권한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회적 합의에 필요한 여론 형성에는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나, 서울대 중심의 국·공립대의 단계적 통합이다. 현재 서울대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교육을 매개로 특권을 재생산하는 기지로 전락해 있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는 대표 국립대로서의 존재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국·공립대 통합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종종 제기됐던 서울대 폐지론은 좌편향이 빚어낸 것으로서 불필요한 논쟁만을 유발하며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사안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효과가 전혀 다를 수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진보교육감들은 매우 현명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국·공립대 통합방안의 요지는 이렇다. 국·공립대는 서울대의 지역캠퍼스가 되며 지금의 서울대는 연구 중심의 활동을 바탕으로 각 캠퍼스에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면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지식 허브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 평준화를 추구한다.

둘, 선 취업 후 진학의 확대. 지금 필자의 아들은 고3이다. 그런데 전혀 고3 같지가 않다. 유유자적하며 주말은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크게 초조해하지 않는다. 녀석은 요리사가 꿈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 정말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이 뚜렷해지면 대학을 가기로 했다.

필자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 보고 나서 필요한 학과를 선택해 대학공부를 해야 효과가 클 것이라 여긴다. 자신이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선 진학 후 취업에서의 대학공부는 그 쓰임새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스펙 쌓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학부에서 이뤄지는 경영학 공부는 현장에서는 대부분 쓸모가 없다.

선 취업 후 진학을 제도화하면 대학등록금 문제도 상당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많은 사례로 나타나고 있듯이 중소기업들이 고급인력 확보 차원에서 고졸 직원의 대학진학을 후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졸업 후 해당 기업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수다. 기업에서 기껏 대학 등록금을 후원했는데 졸업 후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 사회 책임 장학제도의 운영이다. 이러저런 과정을 거쳐 대학 반값등록금이 중요한 이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값등록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결과가 말해 주듯이 대학 반값등록금은 재원 마련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은 게다.

대학 반값등록금이 현실화되자면 다양한 지점에서 창의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그 하나로서 사회 책임 장학제도를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의대를 예로 들어 보자. 국가는 무상으로 의대 교육을 시켜 주는 대가로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를 받으며 정해진 기간 동안 공공의료기관에서 복무하도록 할 수 있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가 시행해 상당한 성과를 본 제도다. 반면 이후 의사가 돼 큰돈을 벌기를 원하는 학생은 알아서 학비를 조달하도록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졸업 이후 사회 책임 진출을 전제로 한 장학제도를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혜를 입는 기관이나 기업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이 장학기금을 기탁함으로써 정부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말하자면 학생과 사회, 정부가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교육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모든 혁신의 출발은 낡은 고정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혁신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뒤집어서 생각해 보고 도발적 질문을 던질 때 혁신의 새 지평은 열린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