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지난 10일 시작된 프랑스 철도노조의 파업이 오늘로 9일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파업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국제선에서는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으나, 르몽드나 르피가로 등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국영 프랑스철도공사(SNCF) 내의 주요 4개 노조가 연대해 진행하는 이번 파업은 프랑스 의회가 17일부터 19일간의 회기로 논의할 예정인 ‘프랑스 철도개혁 법안’의 수정을 요구하기 위함입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는 명명백백한 불법 정치파업입니다. 게다가 파업 기간 중에는 프랑스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치러졌습니다. 이것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발을 볼모로 묶는 명명백백한 비정상적인 떼쓰기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 어디에도 불법 정치파업을 엄단하겠다는 프랑스 공안당국의 비상조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 요구를 가지고 파업을 하든 경제적 요구를 가지고 파업을 하든 그건 전적으로 파업의 주체, 즉 노동조합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파업 기간 동안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예정돼 있다고 하면 그것 역시 노동조합이 전략적으로 판단할 문제이지 법률 위반의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학입시 날 파업을 예고한다고 합시다. 그런 전술은 노동조합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나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자칫 시민들의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는 탓에 지도부는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법으로 엄단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파업을 이끄는 노동조합이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인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한편 프랑스철도공사는 이번 파업에 대처하기 위해 ‘매우 특별한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프랑스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처럼 철없는 자식을 바로잡기 위해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어머니 심정인가. ‘매우 특별한’ 조치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특별한 조치란 우선 이용고객들에게 보내는 파업이 예정돼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에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여행객들을 안내하고 승객들에게 무료전화를 제공하고 다른 날짜로 티켓 교환을 원활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파업에 대처하는 프랑스철도공사의 매우 특별한 조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수천명을 직위해제하고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에 위자료까지 청구하는 조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전경련과 같은 프랑스 기업인단체 메데프(Medef)도 철도노조에게 강력한 주문을 내놓았습니다. “파업으로만 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정부와 대화하라.” 그리고 “책임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주 강력한 주문 어디에도 수조원대의 경제적 손실이니, 파업 주동자를 조기에 검거하라는 주문은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이 프레데릭 퀴빌리에 교통부 장관과의 회동이 예정돼 있었는데도 먼저 파업에 돌입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마누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철도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유용하지 않는 파업을 중단하라고 노동조합을 비난했지만 언제라도 정부는 그들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철도개혁 법안은 프랑스철도공사와 프랑스철도건설공사(RFF)를 재통합하는 것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운영과 시설분리를 다시 운영과 시설의 통합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까요. 그것은 재통합으로 인해 급증하게 될 철도 관련 부채의 급증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되는 각종 민영화 조치들이 철도의 안전과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으로 발생한 거대한 부채문제와 유사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유럽연합의 제4차 철도 자유화 조치도 이번 파업의 중요한 원인이 됐습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이번 파업으로 "철도노동자들이 우리의 사회적 유산이 자유경쟁의 시작이라는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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