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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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아득한 과거다. 2012년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산별교섭에서 ‘병원계 ISO26000(사회적 책임) 실현방안’ 마련에 합의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보건의료노조가 제안한 ‘보건의료산업 좋은 일터 만들기 모델’ 연구사업을 선정했고, 이를 위해 학계·의료계·노조는 공동연구진을 구성했다.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병원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병원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공익 서비스기관으로서 병원·환자·노동자·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긴밀히 협력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선도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과 병원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병원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구체화해 120개 항목으로 구성된 사회적 책임 지표를 개발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업종 수준의 지표를 개발한 최초의 사례다. 체크 항목은 국제기준과 규범·국내 관련법 등을 바탕으로 병원이면 반드시 실행해야 할 평범한 내용이었다.

당시 노동부와 연구진은 연구사업이 사회적 책임 지표 개발에 그치지 않고 병원의 사회적 책임 확산을 위한 노사정 협약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연말에는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공동워크숍을 통해 병원의 사회적 책임 수행 의무를 확인하고 개발된 지표를 구체적으로 학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보건의료산업 노사에게 병원의 사회적 책임은 너무나도 요원한 과제다. 노동부와 같은 동네 친구라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와 영리자회사 허용이라는 실상 의료 민영화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 정책이 병원의 사회적 책임과 부합될 수 있을까. 답은 명백하게 ‘아니올시다’다. 병원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병원운영법인과 경영자, 노동자와 노조, 그리고 환자와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해 병원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과정이 존재해야 한다.

영리자회사를 둔 병원운영법인이 자회사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병원의 사회적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그러한 과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책임 수행 정도를 평가하고 검증해 개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병원이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사회적 책임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병원은 영향권 내에 있는 이해관계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둘 경우 그 자회사가 다른 영리회사와 경쟁하면서 건강식품이나 의료용품을 판매하고 주차장과 사우나를 운영할 때 경쟁업체와 달리 환자와 소비자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병원이 유인책을 제공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또한 병원은 소속 노동자뿐만 아니라 영리자회사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고용의 안정성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도 병원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둘 경우 그 자회사가 병원에 비해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고 건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도리어 자회사의 경우 병원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과 영리자회사 사이의 갈등 속에서 노동권이 침해되고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병원은 환자와 환자가족 등 소비자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의료정보를 제공하고 교육 등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공정한 거래자로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원격의료가 실시될 때 환자들이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보장될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도 병원과 제약회사 사이의 불공정 거래가 근절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이 영리자회사와 공정한 거래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병원은 또 지역사회와 주민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현재 병원들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두고 시장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 온다면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행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은 그나마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키워 왔던 병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싹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의료 민영화 정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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