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어느 인터넷 언론인은 지난 19일 고 이남종 열사 추모제에서 정부당국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에게 이번 “세월호 ‘사고’를 ‘사건’으로 키우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는 이미 ‘사건’이 돼 버렸다. 나아가 이 사건은 바야흐로 ‘사태’의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사태’라고 하면 ‘광주사태’가 떠오른다. 세월호 사건은 이미 지배세력에 의해 광주사태에 비교되고 있다. 우익논객 지만원은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 봤는가?”, “머지않아 빨갱이들이 5·18 광주폭동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폭동을 획책할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같은 폭동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해서 민간 선박에서 일어난 해난 사망사고가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민중학살사건에 비교되는가. 왜 그렇게 비교하는지 도둑이 제 발 저려서가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세월호 사고가 그런 민중행동이 예상되는, 엄청나게 위험한 사건이라는 뜻이겠다. 그들의 어법에 따르면 “정서 자체가 매우 미개한” 족속들의 거친 저항 말이다.

세월호 사고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굳이 명칭을 고집하고 있는 바의 단순한 ‘사고’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광주사태’라고 부를 때와는 뜻하는 바가 전혀 다르지만, 이 사고는 하나의 ‘사태’가 될 것이다.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이, 고의로, 졸지에, 무참히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가 뒤집어진 원인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뒤집어진 이후 구조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의혹투성이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혹이 밝혀지고 책임이 가려지며 처벌될 때까지 민중의 거친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지난 24일 저녁 안산에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이어 시민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확신하게 된 예감이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 특히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그 학부형들은 이 사고를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죽임’으로 판단하고 있다. 침몰이 일어난 원인은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침몰이 일어난 이후의 구조 과정을 지켜보면서 단원고 학생들은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할 자가 있는가.

실종된 학생의 부모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17일부터 차례로 대통령·총리·해수부장관에게 물병을 던지고 에워싸며 거칠게 항의했다. 걸어서 청와대로 가겠다며 밤새 팽목항에서 진도대교까지 걸어갔다. 정부가 구조한다고 국민을 속이면서 실제로는 배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죽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진도에서는 분노한 학부모들이 방송사의 카메라 여러 대를 때려 부숴 버렸다. 그러나 어느 언론사도 그런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따위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그들은 열심히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거짓 정부 발표를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게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서 데스크로 보내는 ‘기레기’(기자+쓰레기)였던 것이다. 어느 진보언론은 이 사고는 재난구호 시스템의 문제이지, 선장이나 선원 등 몇몇 개인의 책임방기 문제가 아니라며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너무나 안이하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어린 세대들은 이 나라에서 보호받고 있는 모든 시스템과 그 운전자들, 독점과 비독점을 망라한 자본, 보수·진보를 망라한 언론, 여와 야를 망라한 정당, 군과 민을 망라한 관료기구, 정상과 사이비를 망라한 종교가 학살의 공범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어느 노동자는 “죽어 간 어린 영령들이여, 우리가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마산에서 온 편지를 읽었다. 이처럼 지금 도마에 오른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 그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주인공들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 때처럼.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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