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요즘은 도통 신문을 들추기가 싫어진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로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 관련 소식을 접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다. 또한 관련해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비리·무책임·무사안일 소식들에 너무 화가 나서다. 나라 전체가 통째로 썩어 문드러진 기분이다. 도대체 성한 곳이 한 곳이라도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실권을 쥐고 있는 5060세대는 한때 자부와 긍지로 넘쳐나던 세대였다. 인구 5천만 국가에서 식민지를 경험했으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주역들이 바로 이들 5060세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이들이 오늘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도취한 채 그저 자리보전에만 급급하고 있다. 전영수의 <세대전쟁>에는 2030세대의 눈에 5060세대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구절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스럽죠. 특히 5060세대 보면 더 그래요. 집값은 자기네들이 다 올려놓고 회사에선 관리자랍시고 2030세대를 갖고 노니 말이죠. 여차하면 자를 것처럼 부리니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일이라도 하나요? 무위도식 그 자체입니다. 학벌이나 능력 보면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고 인정받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그래 놓고 대접은 무지하게 밝힙니다. 순전히 운 좋게 태어난 것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5060세대가 이러다 보니 한국 사회 전체가 정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변화와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소모적인 정쟁에 길들여지면서 속 터지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새 정치를 제기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논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안철수의 새 정치는 보일 듯 말 듯한 ‘이어도’와 같이 ‘아직도’로 일관하며 끝내 실체를 드러내지 못했다. 결국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 타파 대상으로 삼았던 민주당과 손잡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인간의 창조력이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포함해 집행 책임자들이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는 지난해 한 해 동안 단 하나의 입법도 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그 결과 창조경제는 시중에서 여전히 며느리도 모르는 그 무엇으로 통용되고 있다.

결국 5060세대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더라도 정작 변화를 일궈 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처럼 동일한 패턴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는 풍부한 경험이 리더십 발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든 노인들이 부락공동체의 리더 집단을 형성했고, 산업사회에서는 경력이 쌓일수록 직위와 보수가 높아지는 연공서열 제도가 성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가 극심하게 일어나는 시기에는 과거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그 같은 일이 곳곳에서 빵빵 터지고 있다.

이래저래 5060세대는 상황을 더 이상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상황만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리에서 물러나 앉는 것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한 첫 번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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