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침몰선에 갇혀 살려 달라 아우성치는 승객들을 외면하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무책임한 승무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사형’까지 선고할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흉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점들이 있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산업안전 분야에 불문율 같은 법칙, 즉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931년 미국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H.W. 하인리히가 수천 건의 고객보험 상담을 분석한 결과 “심각한 안전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300건이나 되는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석해 이른바 1:29:300 법칙을 이론화한 것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주들은 항상 ‘근로자들의 불안전한 행동’과 ‘안전불감증’ 운운하며 자신들의 사업주 책임 문제를 근로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그러나 모든 안전사고는 어느 날 우연찮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미 사전 징후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들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사항을 세세하게 명시해 놓고 있다.

선박안전법에도 이러한 규정들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정부는 규제완화랍시고 허술한 법을 만들어 무리하게 3개 층이나 증축하도록 세월호 여객선을 구조변경해 줬다. 항만청은 화물량을 초과하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결속하지 않아 낙하 및 편심 발생의 위험성이 있는데도 출항 허가를 내줬다.

규제완화는 또 어떤가. 선장 휴식 때 1등 항해사가 업무대행 가능(2015년 1월 시행), 자료제출로 대체한 컨테이너 안전검사(2014년 1월 시행), 선장의 안전관리체계 부적합 사항 보고 면제(2013년 6월 시행), 선박 최초 인증심사 때 내부심사 면제(2013년 6월 시행)….

게다가 승무원들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교육 실시 문제, 과도한 비정규직 채용으로 책임의식이 없도록 만든 근로감독 부재도 한몫했다. 이러한 주변 환경들이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올해 2월 무려 1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주 코오롱 마우나 리조트 붕괴 참사도 처음에는 폭설에 의한 ‘천재지변’이라고 변명했으나 경찰조사 결과 건축물의 인허가 과정 및 편법 신축과정, 그리고 완공 후 안전관리 등 관계당국의 허술한 행정력 문제와 많은 인원을 수용하려고 건물의 기둥을 생략한 악덕기업주의 합작품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똑같다. 그런데도 정부와 일부 보수언론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감추려고 세월호 선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이미 대통령은 ‘살인죄’를 언급했고 검찰은 ‘무기징역’ 운운하고 있다. 과연 검찰 의지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될까. 단 한 번의 사고로 무려 14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사망했던 2012년 12월14일 울산 석정호 콘크리트운반선 침몰사고 사례를 보자. 당시 기상악화로 인해 공사가 어려운데도 원청건설사 ㈜한라건설과 하청업체인 석정건설은 위험한 공사를 강행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운반선이 전복돼 14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시공회사 대표에게 벌금 2천만원, 하청업체 대표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실이다.

세월호 사업주가 선박안전법을 위반했다면 최고 형량은 겨우 1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 벌금 및 과태료가 전부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전국 제철소에서, 국가 산단에서, 조선소에서, 건축공사장에서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벌금 몇백 만원에 그치고 만다. 누가 감히 “세월호 선장은 더 나쁘고 직업병으로 노동자가 죽어 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사업주는 덜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은 우리 사회의 정치권과 기업의 책임이다. 그리고 여러 조직과 단체장들의 리더십 부재가 낳은 사회적 고질병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침몰하는 세월호 여객선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선장의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선실에서 대기하십시오”라는 지시를 어기고 배 안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이제 전국 어디에선가 동일한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누가 안전조치에 대한 지시를 신뢰할 수 있을까. 고민, 또 고민이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 리더들의 도덕성과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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