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벽을 넘지 못했다.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막혀 버린 것이다.

지난 2008년부터 보험모집인·학습지교사·골프장캐디·콘크리트믹서트럭운전사·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전속) 등 6개 직종에 대해 산재보험 임의가입을 허용했다. 다만 적용제외 신청을 할 경우엔 예외를 두는 특례조항이 포함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시행 6년이 지나도록 9.8%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적용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같은 당 이완영 의원에 의해 가로막혔다. 이 의원이 개정안을 저지하려 한 배경에는 보험업계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확대적용은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이자 환노위에서도 이 의원을 제외한 여야 의원 모두가 찬성했다. 2월 국회를 넘지는 못했지만 4월 국회에서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재보험, 노동자로 인정받는 시작

고성진
사무금융노조
전국보험모집
인지부장

보험설계사를 포함한 특수고용직에게는 산재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험설계사는 레미콘·덤프·택배·대리운전 기사만큼 산재 발생률이 높지 않지만 80% 이상이 산재보험 가입을 바란다. 보험설계사의 경우 임의가입 시작 당시 12.7% 하던 가입률이 현재 8%대로 떨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가 입사했을 때 산재보험 가입에 대해 안내도 하지 않고, 탈퇴 신청서를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했을 때 서명하는 서류에 탈퇴서가 끼어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보험금의 50%를 본인이 내기 때문에 돈 문제도 있고, 보험회사에서 자사 상품에 가입시키는 이유도 있다. 산재보험은 보험사 상품처럼 다쳤을 때 치료비 보상만 하는 게 아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만큼 생활보장을 하기 때문에 돈이 들더라도 대부분 가입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임의가입이 아니라 강제가입이 맞다.

산재보험은 특수고용직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논의는 10년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해법이 나오지 않은 것은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생보협회 등 특고 업종 사업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특고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노동자성이 인정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찬성해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법사위의 같은 당 의원을 붙잡고 반대한다고 한다. 이완영 의원이 처음부터 특고 산재보험 가입을 반대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입장이 돌변한 것은 보험업계의 입김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을 사랑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반대가 있더라도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 취지대로 되고 있나

최순임
전국여성노조
사무처장

2008년 특수고용직도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겠다고 했을 때 취지가 무엇이었겠나. 산재로부터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에서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맞게 적용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산재보험 적용률이 2%라고 한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어디서 나온 2%냐. 혹시 0.02% 아니냐”며 어처구니없어 한다. 경기보조원들은 입사할 때부터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 모두 서명해야 한다. 적용제외 신청서 작성이 입사자들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은 임의가입이 아니라 강제가입이 돼야 한다.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규정도 사업주 100% 부담으로 변경돼야 한다. 어디서 일하든지 노동력을 제공했을 때는 노동력을 주문한 사용주가 산재만큼은 막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에게 보험료의 반을 부담시키는 것은 큰 문제다.

더 웃기는 건 고용노동부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강제가입이나 보험료 사용주 부담 하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신규가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겉으로는 이것도 적용하고 저것도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정책을 포장하기는 좋겠지만 실상 특수고용노동자는 아무것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를 해도 사실상 포장을 하기 위한 것이지 노동자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무척 낮다.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이 추진되길 바랄 뿐이다.

산재보험 민영화 노리는 민간보험사가 뒤에 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현재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에 계류돼 있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엄밀하게 말해 노동계의 요구사항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다. 정부와 여당이 법안 처리를 강하게 추진하고 고용노동부도 이에 동의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닌 새누리당의 이완영 의원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험업계의 강력한 로비력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몇몇 언론은 마치 특수고용직인 보험모집인들이 자기가 속한 회사에서 더 좋은 민간보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민간보험의 보장범위는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정작 민간 보험사들은 특수고용직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놓고 더 비싼 보험료를 뜯어가는 실정이다.

국회에서는 마치 보험보집인이 민간보험을 적용받는 게 좋은지 아닌지가 쟁점처럼 돼 버렸지만, 보험사들은 정작 보험모집인에는 관심이 없다. 갈수록 늘어나는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을 막아 이들을 민간보험의 영역에 묶어 두고, 나아가 사회보험인 산재보험 제도를 약화시켜 민간보험 시장을 키우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현재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의료 민영화와 맥이 닿아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사회보험 가입 확대 필요하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해 새누리당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입법적 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주영 의원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해 불을 지폈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가입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아서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고, 최근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 확대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최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환노위를 어렵게 통과했다. 하지만 법사위 제2법안소위로 회부돼 여야·정부와 노동계 모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벌써부터 낙심하기는 이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에게 산재보험뿐만 아니라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역시 곧 발의될 예정이며, 국회 환노위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에서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다. 환노위 새누리당 간사로서 비정규직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앞으로 더욱 다각적인 노력을 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새누리당 몽니로 특수고용노동자 사회보험 적용확대 요원

한정애
민주당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만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등지급하는 것도 모자라서 국민연금과 연계시켜 기초연금을 푼돈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듯 새누리당의 복지확대는 말뿐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확대 관련 법안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막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물론 야당도 모두 찬성해 지난 2월21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기약 없이 계류시켜 버린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몽니 앞에 열악한 노동계층인 특수고용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확대 법안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세 모녀 자살 사건에 마음이 아프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공약대로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 균등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되도록 하는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새누리당의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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