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1. 올해 1월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산업 노동자 여러 명이 한국기업을 비롯한 외국과 현지 의류자본의 노동착취에 저항하며 투쟁하다 사망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지난달 3일 한국계 의류업체인 약진통상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노동자들에게 911공수여단 소속 공수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해 5명이 숨지고 다수의 노동자가 다쳤다. 1980년 광주를 연상시키는 유혈 상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한국기업들이 한국대사관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바로 며칠 후에 공수부대 투입이 이뤄졌다는 점만 말해 두겠다. 캄보디아 수출용 의류산업은 연간 50억달러 규모다. 이 나라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한다. 현재 캄보디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 봉제업체는 60여곳이다.

며칠 후 방글라데시에서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달 9일 방글라데시 남부의 항구도시 치타공의 한국수출가공공단 안에 위치한 영원무역에서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사측이 자행한 기만 술책(수당을 삭감하고 식대를 급여에서 공제)에 분노한 5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면서 노동자 1명을 살해했다. 영원무역은 4개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9개국에 사무소를 둔 아웃도어 제품 수출 전문기업이다.

#2. 지난달 22~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열렸다. 이번 연차총회의 주제는 ‘세계 재편(The Reshaping of the World)’이었다. 당초 무엇을 어떻게 재편하자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그러나 동북아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를 뜻하는 “통일은 대박이다”는 말을 해 온 박근혜 한국 대통령을 기조연설자로 선정한 것을 보면 대불황의 늪에 빠진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구하는 데 있어서는 경제외적인 변수인 국제정치질서 재편이 돌파구라는 생각이 이번 총회의 기조였던 것 같다.

그는 본 연설에 이어진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과의 일문일답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 경제에 대박일 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에게도 큰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반도 흡수통일이라는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는 남한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에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던 것이다.

맞장구를 친 것은 빌 게이츠다. 그는 포럼에 맞춰 발표한 ‘2014 연례 서한’에서 2035년엔 빈곤국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가난한 나라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해외 원조가 낭비’라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한국의 경우 전쟁 이후 엄청난 액수를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았으나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 원조 공여국이 됐다고 했다. (충분한 원조가 제공된다면) 남미·중앙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도 한국처럼 중간소득 또는 그보다 부유한 국가로 올라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일부 국가는 전쟁이나 정치적·지리적인 이유로 뒤처질 수 있다고 하면서 ‘큰 변화가 없는 한’ 정치 때문에 빈곤에서 탈피하기 어려운 국가로 북한을 지목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규정이나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단 20년 안에,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변혁이나 개혁 없이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모두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이런 환상을 근거로 그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우회적이지만 빈곤의 타파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한반도에 정치질서의 큰 변화, 즉 흡수통일 추진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요약하고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산업의 국내독점은 물론이고 산업독점이 금융과 융합해 금융독점이 돼 있고, 자본수출을 자본축적의 필수적 한 부분으로 삼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은 선진국, 즉 제국주의 국가에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기술과 원자재를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에게 의존하고 있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빼고는 재벌 독점기업들이 전반적으로 국제독점체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영토분할에 나서지 못하고 있으므로 본격적인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다. 선진국 운운하지만 여전히 제국주의에 종속된 자본주의 국가에 불과하다.

둘째, 한국 자본주의는 상대적으로 발달된 자본의 힘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약소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고 있고, 생산양식을 이식해 그 나라들의 노동자를 초과착취하고 있다. 종속국과 제국의 양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아류 제국주의이다.

셋째, 한국 자본가계급은 무모하게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반도 정치질서를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적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로의 진출 확대에 이어 북한에 대해 총체적으로 제국주의의 지배권하에서 자기 고유의 진출영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런 기도는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주제인 ‘세계 재편(Reshaping of The World)’의 중요한 일부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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