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언제인가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라이브 공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서태지가 부른 노래는 마니아들이 대표곡으로 꼽는 <시대유감>이었다. 대중음악에 친숙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꽤나 낯선 노래였는데 어이쿠! 가사가 예사롭지 않았다.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의 시대는 갔어."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 다니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한마디로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한 노래였다. 청중의 반응은 가히 광란에 가까울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청중의 대부분은 10대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당시 10대들로 하여금 그토록 서태지 노래에 열광하도록 만들었을까.

1990년대 10대는 지금의 2030세대에 해당하는 신세대가 처음 무대 위에 드러난 경우였다. 당시 구세대의 눈에 비친 신세대는 한마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존재였다. 기존 통념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도 X세대였다.

1960~80년대 한복판에서 자신의 생을 불사른 구세대는 대체로 개인보다는 가족과 기업, 나아가 국가와 민족 등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구세대에게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었다. 심지어 휴가지에 가서도 회사 걱정을 잠시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 구세대의 대체적 모습이었다. 이들 세대 사이에서 자기 문제에 골몰하고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은 쉽게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단적으로 이들 세대 사이에서 "저 친구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은 지극히 부정적 평가에 해당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는 구세대와 달리 철저하게 개인으로서 ‘나’를 중시했다. 나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고 중심이었으며 또한 목표였다. 구세대가 잃어버린 나를 복권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세대의 가장 중요한 징표였다. 단적으로 자기주장이 앞서는 사람을 경멸했던 구세대와 달리 신세대는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내 감각대로 내 개성대로 톡톡 튀는 나의 표현", "천만번을 변해도 나는 나", "나는 세계의 중심" 등의 광고카피는 바로 이 같은 신세대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구세대는 수직적 위계질서에 매우 익숙할뿐더러 그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신세대는 달랐다. 신세대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 또한 세상의 중심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그들은 생래적으로 수평 지향적이었던 것이다. 신세대가 어릴 적부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공간은 이 같은 수평지향성을 체질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세계와 달리 각자가 중심이면서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특성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신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자 곳곳에서 난리(?)가 났다. 기존 조직 문화와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세대는 수직적 위계질서에 입각한 일방적 통제를 무척 싫어했다. 이 점은 회식을 둘러싼 반응을 통해 쉽게 확인될 수 있다. 구세대에게 회식은 격무에 시달린 직원들을 위로하면서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였다. 부장이 "오늘 회식이다!"라고 말하면 모두가 "와!" 하며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신세대는 "오늘 회식이다!" 하면 속으로 "윽!"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쓴다. 일방적 회식 결정을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침해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신세대 직장인들은 개인 일정이 있다며 회식 불참을 선언한다. 그러면 구세대는 요즘 젊은 세대 중에는 군소리 없이 회식에 참여하는 경우가 없다며 거친 불만을 쏟아 놓는다.

신세대의 특징은 업무 수행에서도 확인된다. 구세대는 수직적 위계질서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데 아주 능하다. 그런 식으로 산업화 시절 초고속 압축성장을 일궈 내기도 했다. 반면 알아서 일을 하라고 하면 매우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준다. 이 점에서 신세대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수직적 위계질서 아래서의 업무 수행은 매우 서툴다. 반면 수평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데서는 아주 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세대는 처음부터 전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전혀 다른 종의 인간으로 구세대와 대면했다. 그들에게 구세대는 늘 불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같은 신세대의 애환을 대변함으로써 일약 문화대통령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신세대를 마냥 곱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는 끝없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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