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달 18일 통상임금 판결을 내놨지만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하다. 그런 가운데 통상임금 개념 자체를 없애 불필요한 오해나 법률적 불명확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정비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개념을 삭제하고, 통상임금의 핵심기능인 가산임금 산정에 대한 별도의 조문을 두자는 것이다.

박종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노동법학회 주최로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와 과제’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할증료 차등부과'로 근로시간단축 압박

임금명세서 어디에도 ‘통상임금’이라는 명칭의 임금은 없다. 통상임금은 다만 가산임금을 산정하기 위한 도구이자, 해고예고수당·연차유급수당·주휴수당·육아휴직수당 등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해고예고수당 등 제 수당의 취지와 목적을 고려할 때 굳이 통상임금을 적용해야 하는 당위성은 없다”며 “오히려 이들 수당은 해고나 육아와 같은 사유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더 강하므로, 기준임금을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산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수당의 기준임금을 평균임금으로 일원화하자는 제안이다. 이럴 경우 노동자들이 받게 될 제 수당은 현재보다 인상된다.

통상임금의 핵심기능은 가산임금 산정이다. 만약 통상임금이라는 개념이 삭제된다면 어떤 기준을 통해 가산임금을 산정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논란이 됐던 정기상여금의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범주에 해당한다고 확인한 만큼 가산임금 산정범위에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며 “아울러 복리후생적 급여 역시 가산임금 산정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복리후생적 급여가 소정근로의 대가라는 점을 명확히 해 향후 임금의 성격을 둘러싼 혼란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기업의 비용부담이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모두 가산임금의 산정기준이 된다면, 기업은 비용상승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의 보완책으로 ‘할증료의 차등부과’를 제시했다.

산업현장의 근로시간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업체의 1주당 평균 근로시간까지는 가산임금 할증료 하향조정 △노사합의로 허용하기로 한 연장근로시간까지는 현행 할증료 부과 △노사합의를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누적 할증료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기업들이 법정근로시간을 최저기준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방식으로 근로시간단축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노사가 가산임금 산정범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타당한 범위를 자율적으로 결정한 경우 그것이 남용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한 유효성을 적극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노조 장시간 근로 택할 가능성" 우려도

박 교수의 제안에 대해 우려와 반론도 나왔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 개념을 도구개념으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감하지만 통상임금 개념의 고유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고정성·정기성·일률성 같은 추상적인 개념요소로 통상임금의 개념을 정의하기보다는 단순한 ‘계산식’으로 입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이라는 개념이나 명칭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면서도 “할증임금제도의 중요한 목적은 장시간 근로의 방지인데, 박 교수의 제안처럼 강행법규를 넘어서는 노사합의를 인정해 줄 경우 합의주체인 노조가 근로시간 축소를 통한 할증임금 포기보다는 장시간 근로를 택할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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