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대한문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이에 항의하던 많은 이들이 연행됐을 때 우리는 알았어야 했다. 화단에 밀려 분향소를 빼앗기고, 이미 집회신고도 돼 있는 장소에서 경찰에 밀리고 최루액에 눈물을 흘릴 때 알았어야 했다. 스물네 분의 영정이 모셔진 분향소가 부서지는 것을 막겠다고 몸을 던진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구속됐을 때, 이것이 대한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렇게 법과 원칙을 좋아한다던 이들이 유독 대한문에서만은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이 쌍용차 노동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대한문의 싸움이 길어지고, 모두가 익숙해져서 경찰의 폭력에 무감각해졌을 때, 김석기씨가 공항공사 사장이 됐다. 용산에서 6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그는 감옥에 가야 했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오른 사람들, 우리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올라간 사람들이 있는 곳에 무리하게 경찰병력을 투입시켜 결국 죽음으로 내몬 그가, 감옥이 아닌 공항공사 사장으로 갔다. 공항공사 사장으로 간 그는 유족들에게 사과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유족들을 폭행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다. 경찰들이 왜 인권을 지키지 않는지를. 경찰들은 왜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지를. 인권과 법을 제대로 지키는 경찰은 승진할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을 죽게 만들고 구속시키고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제멋대로 폭력을 휘둘러서, 결국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들은 승진하고, 국회의원 후보로도 나갈 수 있고, 심지어 공사의 낙하산 사장으로도 갈 수 있다. 그러니 경찰들은 자신들 폭력의 후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 이들은 가끔은 싸움의 대상인 기업이나 한국전력이나 건설회사보다도 경찰을 더 증오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경찰로 대표되는 정부의 폭력에 무감각해지면 곳곳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죽어 가거나 고통을 받게 된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의 천막을 회사가 강제로 뜯어냈고, 이에 항의해 2층 난간에 올라간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장을 경찰은 강제로 진압했다. 회사가 임의로 천막을 뜯어낸 것 자체가 불법인데도 경찰은 그에 대해 제재하지 않았고 처벌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의하는 이를, 그것도 안전장치도 없는 공간으로 밀어 넣어 강제진압을 했다. 심지어 “떨어지면 밑에서 받으면 돼”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들의 인권침해 경쟁이 참으로 무섭다.

정부에 의한 인권침해 공간이 또 있다. 평화롭게 살던 마을에 765킬로볼트(kV)의 송전탑이 들어서고 "이대로 살게 해 달라"는 호소는 완전히 무시되는 곳. 경찰이 할머니들을 비웃고 고착시키고, 들어내고, 가로막고, 욕하고, 패대기치는 곳. 이런 인권침해 때문에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고 나서도 오히려 그 청문회에 나간 것을 경찰이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곳. 바로 밀양이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온 힘을 다해 송전탑을 막고 있는 곳이다. 자신들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계시는 곳이다.

사람들마다 밀양에 가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사람 사는 마을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송전탑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연결하는 것이므로 “원전은 필요 없다”고 외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이곳이 바로 극심한 인권침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단지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권리가 함부로 침해되고 짓밟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찰과 정부에 의한 인권침해를 어디에선가 막지 못하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가 길거리의 돌멩이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된다. 대한문에서, 용산에서, 공항공사에서, 골든브릿지에서, 이곳저곳에서 우리가 그렇게 취급받았을 때 더 많이 분노하고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싸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밀양에서 우리가 힘을 모으면, 그래서 정부와 경찰이 인권을 함부로 짓밟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밀양만이 아니라 우리 전체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달 30일 밀양으로 가는 희망버스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하시면 좋겠다. 이제는 한번 힘을 낼 때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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