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행사장에서 원로 지도자 한 분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목청껏 외쳤다. 그때 필자는 과연 저분이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알고 저런 말씀을 하는가 싶었다. 감히 말하자면 지금 국면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것은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체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임이 이미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의 기초였던 시장만능주의를 지양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은연중에 신자유주의 아닌 자본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자본주의는 별다른 문제 없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와 분리시킬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넘어서려면 신자유주의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러자면 신자유주의의 등장배경을 알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금융자본의 규모가 눈덩이 불어나듯 확대돼 왔다. 그러다가 정상적 방법으로는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과잉자본이 누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잉 축적된 금융자본은 이윤 획득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금융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돈이 잘 돌지 않고,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경제가 꽁꽁 얼어붙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19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석유 위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과잉자본의 폭발적 누적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거대한 과잉자본이 선진국 경제를 타고 올라앉아 숨통을 조이는 꼴이었다.

런던과 뉴욕이 세계 금융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다 잘 알 것이다. 영국과 미국은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전 세계의 부를 끝없이 빨아올린 나라들이다. 그러한 돈이 집중적으로 모인 곳이 런던과 뉴욕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잉 축적된 금융자본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영국과 미국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과 미국의 지도층은 가장 심하게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밤잠을 수도 없이 설쳤을 것이다. 결국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해법을 찾아내고 만다. 묘하게도 두 정부가 찾아낸 해법은 일치했다.

두 나라 정부의 브레인들은 과잉 축적된 금융자본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 주기만 하면 운동을 멈췄던 화폐가 다시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품 교환이 촉진되면서 실물경제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실물경제 활성화가 다시금 금융자본의 이윤 획득 기회를 더욱 확대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것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를 이끌었던 신자유주의의 요체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이런 신자유주의를 범지구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어 왔지만 금융자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의 천국을 지향했던 것이다. 나머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이거나 논리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의 필수 구성요소라고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공기업 민영화·정부 규제를 철폐하는 자유화·경제적 의미에서 국경선을 지워 버리는 개방화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까. 신자유주는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해 '돈이 돈을 버는' 온갖 마법을 선보였다. 전 세계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그러한 마법에 홀려 앞다퉈 신자유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입혀졌던 신비의 옷을 모조리 벗겨 버리고 나면 정교하게 짜여진 거대한 사기극임이 드러난다. 필자는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신자유주의 발가벗기기’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자유주의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절실한 시기다. 그러한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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