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국민일보 임항 논설위원이 지난 20일자 오피니언면에 ‘노사단체는 과연 대표성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썼다.

애드리브를 빼고 임항 위원의 결론은 노사 모두 대표성이 없으니 그 대안으로 모든 임금노동자가 의무 가입하는 ‘노동회의소’(상공회의소의 노동판)를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거나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을 법으로 강제하자고 했다.

그는 9%대의 낮은 노조조직률 때문에 한국 노동계의 대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때 자신의 ‘바이라인’에 ‘노동전문기자’라는 이름을 붙였던 임항 기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일본의 노조조직률은 18.7%로 우리보다 2배나 높다. 대만은 우리보다 3배 이상 높은 37%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노동운동은 물론이고 노사관계도 형편없다.

반면 프랑스는 우리보다 조금 낮은 9%대의 조직률에 불과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노동운동도 탄탄하고 노사관계도 안정적이다.

결국 노조조직률의 높낮이로 그 나라의 노사관계를 단정 짓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이런 사실쯤은 굳이 노동 관련 학자가 아니고, 넓은 의미의 사회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노사관계 연구자들은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그 나라의 노사관계를 판단한다. 이 두 가지 기준으로 각국을 비교하면 세상엔 딱 세 그룹의 나라가 있다.

높은 노조조직률에 높은 단체협약 적용률을 가진 나라들이 1그룹이다.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 대부분 북유럽 나라들이 속한다.

2그룹은 30% 이하의 낮은 노조조직률을 가졌지만 협약적용률은 50%를 넘는 나라들이다. 2그룹은 낮은 조직률에도 산별 교섭력이 강하고 그 효력도 크다. 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독일 같은 나라들이 있다. 북유럽을 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다.

2그룹엔 좀 의외의 나라들이 몇 있다. 한국에선 독일하면 파업도 많이 하고 노동운동도 강해 높은 조직률의 나라라고 인식한다. 독일은 1970년대까지 1그룹에 속했지만 지금은 명백히 2그룹의 나라가 됐다.

80년대 독일에서 공부한 어설픈 한국 유학생들이 독일을 높은 조직률과 강한 산별교섭으로 전 세계 노동운동의 전형이라고 앞다퉈 소개했다. 그들은 국내로 돌아와 대학에 앉아 당시 막 피어나던 노동운동을 이끌던 한국 현장노동자들에게 ‘독일식 산별모델’을 주입하며 ‘독일 만능주의’를 심어 왔다.

그러나 지금 독일의 노조조직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때 50%에 육박했던 조직률은 2002년 22.3%로 떨어졌고 지금은 그보다 더 떨어졌다. 여기에 함정이 하나 더 있다. 산별노조가 주는 각종 복지혜택 때문에 은퇴한 노동자가 계속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전체 조합원의 30%가 넘는다. 이들을 빼고 우리처럼 계산하면 독일의 현재 조직률은 잘해야 10% 초반대다.

그런 독일의 더 큰 문제는 강했던 산별교섭력도 주춤거리는 거다. 독일 노동운동의 침몰은 이미 70년대부터 예견됐고 80년대 들어선 현실로 나타났는데도 어설픈 유학생들 눈엔 보일 리 만무했다.

3그룹은 낮은 노조조직률에 협약적용률도 낮은 나라들이다. 한국·미국·일본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3그룹에 속한 나라들의 노사관계는 형편없다. 그 원인의 8할이 국가권력의 정책방향이다. 임항 위원은 노사 양측에게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해결책으론 ‘법으로 강제’를 주장하면서 정치권력에게 기댄다. 따라서 칼럼의 논리적 구성도 엉클어졌다.

임항 위원의 애드리브 가운데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계파다툼 탓에 주요 현안에 대해 수개월씩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다”고 썼다. 해방 이후 반세기의 노동운동을 연구해 온 임송자의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선인, 2007)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한다. 임항 위원이 칼럼에서 언급하지 않은 한국노총 지도부의 맨살을 볼 수 있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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