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 암사동 철거민 이순복이 원인 불명의 화재로 사망했다. 2013년 신장병 환자 아버지가 딸의 취업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뒤 딸에게 병원비 부담을 지게 할 수 없다며 자살했다.”

반빈곤네트워크 등 5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개최한 ‘빈곤장례식’에서 내건 현수막 내용이다. 지난 20여년간 가난으로 인해 사망한 빈민 수십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날 이상준(73)씨는 현수막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기초생활수급액 월 49만원으로 쪽방 월세 17만원을 내고 나면 하루 두 끼 먹기도 빠듯하다. 연락도 안 되는 자식의 수입을 문제 삼아 이마저도 박탈하는 부양의무제가 무섭다. 그에게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씨는 “복지정책이 현실성이 없다”며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날 빈곤장례식은 유엔이 92년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10월17일)을 기념해 열렸다. 조직위는 “가난으로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빈곤 철폐를 요구한다”고 외쳤다. 쪽방촌 주민·노숙인·장애인·철거민·노점상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748명은 장례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탈출률은 2007년 33.2%에서 2009년 31.3%로 하락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빈곤이 세계적 문제가 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가난한 이들은 쫓겨나고 죽어 갔다"며 "빈곤은 구조적 문제로, 민중이 스스로 권리를 선언하고 연대할 때 철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집과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게 진짜 복지”라며 △부양의무제 폐지와 기초생활보장법 개악 저지 △철거민·노숙인 등 도시빈민 생존권 쟁취 △장애등급제 페지 △재개발 중단을 촉구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에는 대한문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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