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이른바 이석기 사건이 지난 열흘 동안 이 나라를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경과는 언론에 수도 없이 반복 보도됐으므로 이 글에서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스스로 진보세력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충분한 근거도 없이 현역의원을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압수수색하고 구속하고 극형으로 처벌하려 드는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박정희식 파쇼통치로 치닫는가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런 내란음모 혐의는 박정희 군사파쇼 통치 시절, 민주세력을 때려잡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수법이 아닌가.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자신들의 종북 사냥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석기 의원이 올해 5월 모처에서 가진 모종의 모임에서 한 발언의 녹취록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처음에는 일부를 나중에는 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 녹취록을 보고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당혹스럽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어떤 의원은 “허탈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이석기 사건과 상관없이 국정원 대선 개입·공작·은폐에 대해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할 것, 책임자를 처벌할 것, 국정원을 개혁할 것,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할 것 등의 투쟁은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그 둘은 별개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입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겁하다.

그와 비슷하지만 약간 결이 다른 입장으로서, 국정원과 경찰의 대선공작·은폐와 그에 대한 국민의 규탄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가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마녀사냥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해서도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러므로 그 두 개의 측면을 결합시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대체로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는 등 국정원 규탄투쟁을 적극적으로 해 왔던 진보세력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과 이달 7일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고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 이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이석기 사건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압수수색·구속·처벌하려는 사법적 측면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그룹이 행한 활동과 발언에 대한 정치적 대응의 문제는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즉 국정원·검찰과 박근혜 정부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가하고 있는 사법적 조치는 분명히 절차상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예컨대 불법 도청·프락치 매수·녹취록 공개 등) 내용적으로 볼 때도 종북 척결의 명분으로 이뤄지는 매카시즘 광풍의 혐의가 짙다는 의견이다. <한겨레> 8월31일자 사설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의 행태가 내란음모에 해당하는가 하는 법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극적인 발언의 수준을 넘어 실제로 물리적 준비 등의 행위가 있었는지, 이들의 발언이 실천 가능한 내용인지 등에 대한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부당성을 규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움직임에 대해 그 정치적 올바름 여부를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 진보는 재구성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진보언론이나 스스로 진보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 일반화돼 있다. 이 입장 또한 대체로 동의가 된다.

그러나 이 입장과 관련해서는 각론에 들어가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내란음모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그동안 드러난 이 의원의 여러 언행이 국회의원으로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언행들이었다”며 “불체포특권에 연연하지 말고 이 의원 스스로 수사기관을 찾아 수사를 청하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대로 정의당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했다.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언행’을 하면 아무라도 체포해도 되는가. 일반 국민이라면 해도 되는데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용인돼서는 안 되므로 체포돼야 하는가. 자수해서 광명을 찾아야 하는가. 이로써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서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물론 이 과정을 거치며 통합진보당 역시 노동대중으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보언론들이 말하는 이른바 그 시대착오성, 다시 말해 혁명성 때문이 아니다. 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되는지 읽지 못하는 그 현실인식의 비과학성과 오로지 민족적 과제만을 절대시하는 그 정치지향의 비계급성 때문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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