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대구지역 택시 사업장 노조 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소수노조는 다수노조가 공정 대표의무를 위 반했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부터 조합비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수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내용 전체를 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소속인 다수노조는 중앙법률원에 소수노조의 신청에 대한 대응방법을 물어 왔다.

이처럼 공정대표의무 위반과 관련한 사건이 최근 폭증하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다투는 사건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교섭대표노조에서 탈락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소수노조들이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이론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교섭대표노조가 노동권 보장의 상대방이 돼 버렸다. 사용자의 책무가 교섭대표노조의 의무로 바뀐 형국이다. 개정 노조법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의회에 있다. 기존 복수노조에 보장되던 노동기본권조차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개악한 결과다. 단결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거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의회는 사업 및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는 명분으로 소수노조의 노동3권을 박탈했다. 노사 간 균형의 추가 개정법 시행으로 급격히 사용자 쪽으로 기울었다.

노조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공정대표의무의 문제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정 노조법 도입 당시 기존 노조의 다수는 창구단일화 제도에 동의한 것이 사실이다. 소수노조가 등장하더라도 다수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되돌아온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교섭대표노조는 허울뿐이다. 권한은 고사하고 그동안 사용자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소수노조 관련 문제까지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비용 또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소송에 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것도 벅차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개정 노조법 이전에 그 어느 노조가 다른 노조의 전임자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던가. 임금인상률을 동일하게 해 달라는 주장의 상대방은 늘 사용자이지 않았나.

이제 창구단일화 제도와 공정대표의무의 실효성 여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정대표의무 제도는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된 원래 취지에도 반한다. 노조 간 선의의 경쟁과 노조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복수노조 제도의 원래 취지였다. 그런데 공정대표의무를 강제하면서 어떤 노조를 택하더라도 근로조건과 노조활동에 있어 별반 차이가 없게 만들었다. 당연히 복수노조 제도는 그 의의를 상실했다.

창구단일화·공정대표의무 제도를 시급히 손질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공정대표의무 위반의 요건과 효과를 명확히 정한 법률이 아예 없다. 그 흔한 매뉴얼조차 없다.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주장하거나 방어하더라도 이에 관한 판단기준을 찾을 길이 없다는 말이다.

그 누구도 공정대표의무 제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게다. 예를 들어 타임오프 배분과 관련해 법원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합원에 비례해 인정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같은 기준이 모든 단협 조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어떤 노조라도 활동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편의가 제공돼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사무실이라면 조합운영에 적당해야 한다. 조합원수에 단순 비례해 적용한다는 조건만 적용한다면 요상한 결과가 벌어진다.

걸상만 있고 책상은 들여놓지 못하는 기형적인 경우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대표의무의 대상과 그 범위 및 위반에 대한 판단기준에 관한 법령과 해석이 속히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요즘 법정에서 상대방 대리인으로 낯익은 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나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노조 간 다툼으로 만나게 되면 영 불편하다. 하루빨리 이 같은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같은 방향을 향해서 힘을 모아도 부족한 노동현실이 아니던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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