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고 땅을 밟았다. 수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어리둥절했다. 아파하는 의봉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투쟁에 함께한 동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경찰서로 향했다. 조사를 마치고 의봉이는 우정병원으로 갔고, 필자는 울산중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296일 만에 혼자가 됐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농성이 끝났음을 느꼈다.

이틀간의 조사·면회·석방. 33개월 만에 수배가 해제돼 만끽하는 자유가 아직도 어색하다. 모두가 어렵지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만 외톨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마치 내 투쟁은 끝나 버린 것 같은 절망감이 하루하루 휴식을 방해했다. 습관적으로 지회장에게 전화를 하고, 자료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농성 때보다 더 긴장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일까. 몸이 피곤하다.

5년 만에 부모님 집에서 잠을 잤다. 얼마나 편한지. 집 밥을 먹으면서 마냥 즐겁다. 긴 머리가 싫으신지 보자마자 머리 깎으라며 성화이신 아버지를 제외하면 싫은 소리 하는 사람도 없다. 다섯 살도 안 된 조카 3명의 얼굴도 처음으로 봤다. 오랜만에 ‘가족’을 느낀다. 왠지 호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한 달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박정식 열사 장례식장에서 술을 따르던 날.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산 사람은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신 열사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지난달 20일 희망버스와 관련해 수배 받은 박현제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장이 “(지난 16일 열린) 불법파견 실무교섭에서 홀딱 벗은 느낌이다. 어찌해야 할지…”라고 고뇌하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디스크로 입원 중인 천의봉 사무장은 “다음주에는 공장에 들어가 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결의에 찬 마음이 느껴진다.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확인시켜 준다.

지회 조합원들은 14일 전면파업 후 서울 양재동에 있는 현대차 본사로 상경투쟁을 했다. 16일에는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 9차 실무교섭이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결과도 없다. 아무래도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힐 것 같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거라도 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현대차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오너경영을 하는 정몽구 상사이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 해결의 키는 정몽구 회장에게 있다. 그래서 윤여철 부회장 등 노무 관련 관리자들이 현대차 불법파견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을 경우 많은 문제들이 꼬이게 된다. 따라서 정몽구 회장이 결단할 수 있도록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요구가 왜 정당한지를 알리는 내용으로 정몽구 회장에게 편지쓰기 운동을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우표를 붙인 편지 사진과 내용을 게시하면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이 올바른 다양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은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리전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피해에 대한 공동책임이 없다면 누구도 대리전을 치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걱정 없이 투쟁할 수 있게, 박정식 열사 투쟁이 장례식장 비용 걱정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수배 받은 박현제 지회장이 해고자 기금은 최소 5억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위한 해고자 생계기금 5억원 조성운동’을 제안한다.

두 가지 투쟁을 제안한 것은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고공농성이 마무리돼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무엇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철탑에서 온 편지>도 마지막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 많은 지지와 연대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글을 매주 월요일 지면에 실어 주신 <매일노동뉴스>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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