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현대중공업 미국 건설장비 법인이 인종차별로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미국 법인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 백인 관리직 직원이 근무 중에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실은 인터넷에선 여러 매체가 보도해 제법 알려졌지만 주류 매체에선 거의 언급이 없었다. 다만 중앙일보가 13일자에 ‘폐쇄적 기업문화로는 글로벌 성장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언급한 정도에 그쳤다.

현대중공업 미주법인(건설장비)의 한국인 법인장이 젊은 한국인 직원을 선호한 게 인종차별 소송의 빌미가 됐다. 이 회사의 퇴직 직원인 케빈 메이허(62)씨는 2009년 이 회사에서 인사 담당 간부로 일하다 해고되자 “백인이란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6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일리노이주 연방 북부지방법원은 지난 11일 메이허 대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한국인 직원 선호가 사업적 이유로 판단된다며 메이허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이허씨의 항소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비록 1심 판결에서 이겼지만 외국에 진출한 한국 재벌들의 조직문화가 자주 입길에 오르내린다.

메이허씨는 소장에서 한국인 임씨가 2008년 이 회사에 대표로 부임하면서 회사 내 직원들을 "미국인에서 젊은 한국인으로 바꿔놓겠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강조한 대목은 조직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 임씨는 자주 직원들에게 나이와 인종으로 편을 갈랐다는 것이다. 메이허씨는 미국 사회에서는 연령과 피부색에 관한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임씨에게 조언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인장 임씨는 조직을 한국인 위주로 물갈이했다. 2009년 회사가 계약을 종료한 13명 가운데 11명이 한국인이 아니었다. 메이허씨는 “빈자리는 법인장의 입버릇대로 40세 미만의 '젊은 한국인'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메이허씨는 회사 내에서 한국인 직원들끼리만 밥을 먹고 골프를 치는 바람에 소외를 느꼈다고 주장했단다.

논란이 된 현대중공업 미주 건설장비 부문은 2011년 6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회사를 이전했다.

조지아주는 지난 6월 한국의 한 자동차 부품 현지공장에서 흑인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한 것 때문에 반한기업 시위가 일어나는 등 반한 감정이 이는 곳이다. 현지 언론과 정치권까지 나서 노조 설립을 억제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무시하는 가혹한 근무환경을 지적하고 나섰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지 말란 법 없다는 옛말이 딱 맞다.

중앙일보가 13일자 사설에서 현대중공업을 향해 언급한 말에는 한국 재벌기업들의 노사관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중앙일보 사설은 “실제로 한국식 근로조건을 강요하다 문제를 일으킨 사업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식 근로조건’이 뭔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듯하다.

입만 열었다 하면 ‘글로벌’을 외치는 재벌기업들이 이런 수준의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글로벌은커녕 세계적 망신살만 뻗칠 뿐이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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