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증거를 확인한 뒤 은폐를 모의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성한 경찰청장과 간부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경찰청 기관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서 야당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은폐·축소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거론하며 "경찰이 대선중립을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태에 대한 빠른 수사를 촉구하며 야당의 공세에 맞섰다.

◇"경찰, 국정원 댓글 확인하고도 없다고 발표"=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 중이던 지난해 12월15일과 16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의 분석관들이 나눈 대화가 담긴 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수사과정에서 국정원의 불법 댓글과 관련한 아이디·패스워드 등의 증거를 발견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발견하고도 "결과를 확인해 보니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써갈려고 그러거든요"라며 은폐 모의를 했다.

정 의원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는 '반대'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는 '찬성'을 누르고 직접 비방글도 게시하는 등 (대선개입 댓글을) 다 알아냈는데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자고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댓글이 삭제되는데 잠이 와요?"=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경찰은 국정원이 증거 인멸을 위해 댓글을 삭제하는 것을 발견하고도 방조하고 있었다. 대선 사흘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2월16일 새벽 4시께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은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영상에는 분석관들이 "지금 자도 돼요", "지금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라고 말을 주고받는 장면도 담겼다.

이 의원은 "경찰이 (국정원의) 증거 인멸도 이미 확인을 했다"고 경찰을 질책했다. 이에 이성한 청장은 "해당 분석관에게 확인한 결과 댓글 삭제는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친노세력 대선 패배 인정 못해”=경찰에 대한 야당의 추궁이 계속되자 새누리당은 상대 의원들을 직접 겨냥해 거친 말을 던지는 등 국정조사를 공방의 장으로 몰아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동영상이 주어진 의사발언 시간 5분을 넘어서도 계속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곧바로 국정조사장에서 퇴장했다. 회의 정회를 요구하며 퇴장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30여분이 지난 뒤에야 다시 국정조사에 참석했다.

전날(24일) 법무부 기관보고에서 폭로된 권영세 주중대사 녹취록을 두고 새누리당의 반발은 계속됐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녹취록을 공개한) 박범계 의원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국정조사장에서 폭로했다"며 "녹음 파일 취득 절차를 공개하고,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의원직 사퇴 등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이장우 의원도 "(민주당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친노와 친문(문재인) 세력들이 대선 패배를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현상을 지금도 보인다"며 "이런 것들이 지지를 급락시켜 민주당이 휘청대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신기남 국정조사특위원장은 "가급적 동료·선후배 의원들에게 최소한의 금도를 발휘해주는 관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밖 국정원 사태 시국선언은 계속=한편 국정조사가 열리던 국회 담장 밖에서는 국정원 정치개입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과 연석회의가 잇따랐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 연석회의를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재차 주문했다. 이날 또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사제 121명은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국가기밀문서인 남북회담 대화록을 불법으로 공개한 것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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