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때문에 유럽 친구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니, 벌써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자동답장이 날아온다. 언제 일하러 돌아오나 살펴보니, 기본이 3주를 넘긴 다음달이다. 여름휴가를 뜻하는 바캉스라는 말의 어원이 영어로 ‘비우다’는 뜻인 ‘vacancy’와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공장과 사무실을 텅 비우고 놀고 쉰다는 뜻일 테다. 여기서 영어로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연차유급휴가가 얼마나 되기에 몇 주씩 여름휴가를 떠날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가 2007년 펴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휴가와 공휴일 비교 : 휴가 없는 나라 미국>이라는 보고서가 눈에 띈다.

4주의 연차유급휴가

OECD 회원국 가운데 21개국(한국은 포함되지 않음)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니, 법정 연차유급휴가에서 휴가기간 계산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휴가일수를 근무일·공휴일·주말을 따로 나누지 않고 모두 합쳐서 주 단위로 계산하는 경우가 있고, 둘째 근무일에 해당하는 날만 휴가일로 계산하는 경우가 있다. 연차유급휴가를 주 단위로 계산하는 나라는 호주(최저 4주)·캐나다(최저 2주)·핀란드(최저 4주)·독일(최저 4주)·그리스(최저 4주)·아일랜드(4주)·이탈리아(4주)·네덜란드(4주)·뉴질랜드(4주)·스위스(최저 4주)·영국(4주) 등이 있다. 유급공휴일이나 유급주휴를 빼고 근무일수로만 휴가날짜를 세는 나라로는 오스트리아(최저 22일)·벨기에(20일)·덴마크(30일)·프랑스(30일)·일본(최저 10일)·노르웨이(25일)·포르투갈(22일)·스페인(22일)·스웨덴(25일) 등이다.

보고서는 연차유급휴가가 병가·육아휴가·가족간호휴가 등 여타의 법정 유급휴가를 뺀 순수한 연차휴가임을 강조한다. 물론 단체협약으로 보장되는 각종 유급휴가도 뺀 것이다. 한편 오스트리아·벨기에·스웨덴·뉴질랜드에서는 법정 유급휴가 동안 사용자가 휴가보너스를 지불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와 벨기에는 보너스가 대략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뉴질랜드와 스웨덴은 월급의 10% 정도를 더 받는다. 재미난 것은 오스트리아에서는 심야교대제 노동자에게 휴가를 며칠 더 준다는 점이고, 미국의 경우 연차유급휴가가 하루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연차유급휴가를 규정한 법률이 아예 없다.

이에 더해 법정 유급공휴일의 경우 호주 7일, 오스트리아 13일, 벨기에 10일, 캐나다 8일, 덴마크 9일, 핀란드 9일·프랑스 1일·독일 10일·그리스 6일·아일랜드 9일·이탈리아 13일·뉴질랜드 7일·노르웨이 2일·포르투갈 13일·스페인 12일이었다. 유급공휴일을 규정한 법률이 없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일본·네덜란드·스웨덴·스위스·영국 등 6개국뿐이었다. 법률로 연차유급휴가와 유급공휴일 모두를 규정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다. 미국을 뺀 대부분의 나라들이 연차유급휴가와 유급공휴일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유럽의 나라들이 해마다 20일 혹은 4주 이상의 연차유급휴가를 보장하는 것은 유럽연합(EU) 노동시간 지침(Directive)에 근거한 것이다. EU 지침(1993년)은 모든 노동자가 “최소 4주의 연차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노동자들은 연차휴가나 공휴일을 유급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2006년 노동통계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77%가 연차유급휴가를, 76%가 유급공휴일을 누렸다. 날수로 따지면 유급연차휴가는 12일(전일제 13일·시간제 9일), 유급공휴일은 8일(전일제 8일·시간제 6일)이었다. 여하튼 미국 노동자의 4분의 1 가까이가 연차유급휴가나 유급공휴일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유급병가’ 조항 없는 한국의 노동법

유급휴가·휴일을 살펴보는 김에 유급병가에 대한 국제비교도 찾아봤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서 2009년 낸 <22개국 유급병가 정책 비교>를 보니, 50일 걸리는 암 치료의 경우 룩셈부르크와 노르웨이는 50일 치료기간 전체에 대한 임금을 회사가 주도록 정하고 있다. 핀란드는 47일, 오스트리아 45일, 독일 44일, 벨기에 39일, 스웨덴 38일, 덴마크 36일, 네덜란드 35일, 스페인 33일, 이탈리아 29일, 그리스 29일, 일본 28일, 프랑스 24일, 캐나다 22일, 아일랜드 17일, 스위스 15일, 호주 10일, 영국 10일, 뉴질랜드 5일치를 주게 되어 있다. 5일짜리 치료가 필요한 감기에 걸리더라도 대부분 유급병가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기준법에서 연차유급휴가(15~25일)를 규정하고 있다(제60조). 하지만 유급공휴일과 유급병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반쪽짜리도 안 된다. 유급공휴일과 유급병가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차유급휴가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고, 근로기준법에 유급공휴일과 유급병가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유급휴가 확대는 노동시간단축과 동전의 양면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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