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세계 어디서나 비정규직이 문제다. 불안정노동(precarious work)이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다. 장-마리 페르노 프랑스 경제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 대부분이 불안정 일자리다. 전일제 노동자수(FTE) 기준 고용률을 보면 2001년 58.2%에서 2003년 58.9%로 거의 변동이 없다. 같은 기간 늘어난 신규 일자리는 모두 시간제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한국노총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프랑스·독일·덴마크·일본에서 온 노동전문가들이 참석해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의 비정규직 실태과 해법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에서도 불안정한 일자리의 증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해법은 달랐다. 강한 노조가 있는 나라는 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사용과 차별을 규제했다. 덴마크나 독일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치 비정규직에 대한 법·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처럼 소개된 이들 나라는 법 조항이 아닌 노사 또는 노사정 간의 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나 일본 같은 경우 법률적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비정규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 사회과학연구소에 온 토마스 하이페터 연구원은 "독일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53%가 비정규직"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정규직과 처우가 동일하고 노동시간만 짧은 형태의 무기근로 파트타이머가 25% 수준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독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용형태는 파견노동과 기간제·제한적 시간제 노동이다. 파견노동의 경우 91년 0.4%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2.3%로 최근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독일에서 불안정 일자리의 증가는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로 직결됐다. 토마스 연구원은 "독일 저임금 노동자 추이를 보면 95년 17.7% 수준에서 2007년 24.2%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중간임금 계급의 감소는 중산층의 저하를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저임금층의 증가는 제조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에서 주로 이뤄졌다. 토마스 연구원은 "독일 금속노조의 임금교섭이 더 이상 패턴교섭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산업별 저임금 노동자 비율(2010년 기준)을 보면 금속·에너지·화학 등 제조업은 10%대 안팎인 반면 전체 평균은 32.1%로 3배나 높다. 독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전 산업 최저임금 적용,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강화 캠페인으로 접근하고 있다.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는 지난해 금속과 화학업종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에 대한 임금프리미엄 협약을 맺었다. 파견노동자에게 추가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토마스 연구원은 그러나 "기본급에만 적용하고 수당은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정규직과의 동일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의 경우 노동자 3명 중 1명이 매년 이직할 정도로 노동유연성이 높다. 매년 일자리의 12%가 사라지고, 그만큼 새로 만들어진다. 특히 해고가 쉽고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덴마크 최대 노조인 3F에서 일하는 노동경제학자 헨릭 스코프스테드 이베르센씨는 “덴마크에서는 시간제 노동자에게도 단협이 적용되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자로 분류하지 않는다”며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노동자도 사용사업주의 근로감독하에서 일하는 동안은 동일한 단협을 적용받는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라면 사내하청 노동자도 정규직과 동일한 단협, 동일한 임금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실직을 해도 임금대체율이 높은 실업급여가 최대 2년간 지급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이베르센씨는 “무엇보다 강력한 노조가 있기 때문에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하는 노사정 협약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타니 노부유키 일본노총(렌고) 종합노동국장은 “파견직의 44.9%, 계약사원의 34.4%가 비자발적 비정규직”이라며 “비정규직의 증가는 청년층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 결혼과 출산율을 낮추는 사회적 문제”라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해 8월 노동계약법을 개정해 기간제 노동계약이 반복갱신돼 통산 5년을 넘으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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