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원에서 병동 간호사로 일하는 문현정(32)씨는 지난 2010년 3월 뱃속의 첫 아이를 잃었다. 임신 6주 만에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 ‘계류유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문씨는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유독 유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명이 될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제주의료원을 상대로 실시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12명의 간호사들이 임신을 했는데, 그중 4명이 유산을 했다. 문씨를 비롯해 유산한 간호사들의 임신기간은 최대 닷새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했다. 2009년에는 15명의 간호사가 임신을 했는데 5명이 유산했다. 2009년과 2010년 자연유산 발생률은 33.3%로 전국·제주도 평균보다 18~19%나 높았다. 2009년에는 4명의 간호사가 선천성심질환이 있는 아이를 낳았다.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29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주최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과 여성단체 관계자 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제주의료원의 유산비율이 높은 이유로 인력부족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지목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출신인 박현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부 부지부장은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른 채 야간근무와 새벽근무를 하는 근무환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경우 한 달에 8~10번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일명 ‘나이트’ 근무를 한다. 돌봐야 하는 환자는 간호사 1인당 25명 정도다.

이런 가운데 2009년과 2010년에 임신하는 간호사들이 급증했다. 안 그래도 나이트 근무 비율이 높은데, 임신한 간호사들을 나이트 근무에서 제외하면 나머지 간호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런데 해당 간호사들도 임신을 해도 자신의 임신사실을 모르거나,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몇 번의 나이트 근무를 하고 난 뒤에야 임신사실을 병원에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부지부장은 “태아의 심장이 발달하는 임신 4~6주에 나이트 근무는 물론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일하는 이브닝 근무를 하면 유산이나 태아의 심질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환자들이 많은 병원의 특성상 강도 높은 노동과 임산부에 해로운 약품 분진도 유산비율을 높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다음달 말께 제주의료원 유산사건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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