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에 무기계약직이 도입되면 기간제 근로자들은 무기계약직에 비해 임금 및 근로조건에 차별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 개선이 될 수 없고, 무기계약직들은 기간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시정 신청권이 없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용자가 소수라도 무기계약직을 도입하게 되면 현행 차별시정제도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법제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2009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무기계약직 근로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의 한 부분이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 무기계약직이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급여는 기간제 수준을 유지하고, 복지제도나 승진에 제약이 있었다고 밝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인권위에서 무기계약직이나 기간제로 일하는 상담원·사무보조원·홍보보조원·운전원들이 “더 이상 차별적 처우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15일 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직가입하는 형태로 정식명칭은 국가인권위원회분회다. 가입대상 19명 중 14명이 동참했다. 오는 18일에는 발족식을 열 예정이다.

실태조사 결과는 꼭 인권위의 자화상이었다. 인권위 입사 5년차 상담원 정미현씨는 기본급 100여만원에 수당을 합해 월 157만원을 받는 무기계약직이다. 변호사나 법률구조공단 상담 경력자, 상담 관련 자격증 소지자로 자격을 제한하는 상담원은 애초 정규직인 조사관으로 가는 훈련소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무기계약직군으로 변질됐다. 급여는 게걸음을 걷고, 수당이나 승진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정씨는 그나마 상담원은 10만원 수준의 상담수당이 지급돼 다른 직군보다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들 인권위 무기계약직·기간제의 처우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시정 권고를 해왔던 인권위가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셈이다.

이들은 출범식에 앞서 낸 보도자료에서 “인권위는 승진이나 수당에서 배제된 무기계약직의 현실을 법을 앞세워 정당화했다”며 “기간제나 무기계약직이라는 제도가 가진 맹점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우리들의 처우 개선 요구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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