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장· 해우 법률사무소)

대상판결/ 수원지방법원 2012고정1678 업무상배임

1. 사건의 경과

조장희 삼성노동조합 부위원장(이하 ‘피고인’이라 함)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 주식회사(이하 ‘회사’라 함) 리조트사업부에 입사해 식품·물류 업무에 종사하면서 2002년 2월 노사위원에 당선돼 2008년까지 6년 동안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다.

피고인은 6년 동안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회사의 제한된 경영자료 제공으로 인해 회사의 경영투명성 등을 확인하는 데에 한계를 절감했다.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삼성그룹이 계열사들로부터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그 파문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회장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그 후 피고인은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취미(이건희 회장은 스피드광이라고 할 만큼 카레이싱을 즐긴다고 함)를 위해 회사의 영업장인 ‘스피드웨이’(자동차 경주용 경기장)의 영업을 중단한 채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회사 예산을 전용해 스피드웨이 코스 확장공사를 진행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피고인은 삼성노동조합이 설립되면 스피드웨이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무단 사용, 스피드웨이 확장공사를 위한 회사의 예산전용 등 잘못된 경영형태를 밝혀 회사 재산의 불법전용을 막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내 전산회계보조장부시스템(SAP)에 회사로부터 부여받은 ID로 접속한 다음 전자세금계산서용 매입·매출자료 파일(이하 ‘이 사건 파일’이라고 함)들을 자신의 업무용 PC에 다운로드받아 보관하다가 노동조합 설립을 앞둔 시점인 2011년 7월4일경 사내 이메일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 이메일로 전송했다. 위 매입·매출자료는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을 위해 매입매출처, 작성일, 공급가액, 담당직원, 품목 정도가 기록된 것이었다. 물론 피고인은 이 사건 파일을 타인에게 유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는 피고인 등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기미를 보이자(2011년 7월12일 삼성노동조합 설립, 같은 달 18일 노동조합 설립신고증 교부받음), 위 매입·매출자료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업무상배임죄로 고소하고,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이를 주요사유로 들어 피고인을 해고했다.

용인동부경찰서에서는 애초 위 매입·매출자료는 관련 업무종사자라면 누구나 접근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영업비밀이라고 볼 수 없고 위 자료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사실 입증도 없으므로 업무상배임죄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검사는 피고인이 개인 이메일로 전송한 전자세금계산서용 매입매출자료는 회사의 영업비밀이나 주요한 영업자산에 해당하고, 이 사건 파일을 개인 이메일로 전송한 행위는 자료를 외부로 유출한 행위로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며 약식기소했다. 2012년 6월14일 피고인은 약식명령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2. 판결의 주요내용

대상판결은 자료의 반출이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또는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해야만 하고, 그 자료의 유출로 인해 스스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 사건 매입·매출자료가 영업비밀인지, 아니면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는지,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는지 여부 등의 구성요건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차례로 검토하고 있다.

첫째,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하는바, 여기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은 그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435 판결 등).

회사의 정보보호규정에는 문서 등 정보자산의 생성시 회사의 비밀분류 기준에 따라 극비, 대외비, 일반의 3등급으로 구분해 표시하되 이러한 표시가 없는 문서이지만 회사의 고유한 기술정보, 경영정보가 나타나 있는 정보자산은 대외비로 간주한다고 정하고 있고, 피고인이 복사 등 방법에 의한 복제를 일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영업비밀보호 서약서’를 작성했고, “불법으로 사용시에는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규정 및 서약서, 경고문의 내용은 회사가 소속 직원들에 대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영업비밀누설금지의무를 부과한 것에 불과하고,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각 파일에 대해 ‘극비’ 또는 ‘대외비’의 구분표시를 한 바 없고 피고인과 같이 이 사건 파일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고지한 바도 없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파일을 자신의 회사 내 PC에 다운로드받거나 이를 메일에 첨부해 개인메일로 전송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보안장치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춰보면, 이 사건 파일이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관리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파일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둘째, 회사 직원이 경쟁업체 또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의사로 무단으로 자료를 반출한 행위를 업무상배임죄로 의율하기 위해서는 그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에 해당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자료가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돼 있지 않아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는 이를 통상 입수할 수 없고, 그 자료의 보유자가 자료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인 것으로 자료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해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할 것을 요한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도3915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 파일은 최대 약 1년 동안의 회사의 매입(22,000건), 매출(5,500건) 세금계산서를 모은 것으로서 각 전표번호, 거래회사명, 거래처의 사업자등록번호, 작성일, 공급가 및 부가세액, 발행일과 승인일, 담당사원번호 및 사원이름, 품목, 관리번호가 기재돼 있는 점, 이 사건 파일에는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거래처들의 회사명 및 공급가액, 개략적인 품목이 적혀 있을 뿐 거래처들과 사이에 진행된 거래의 구체적인 거래조건이나 회사가 취득한 원가나 이윤, 거래처별 대금할인비율 등의 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은 점, 일정기간 작성된 전자세금계산서를 모아놓은 것으로서 특별히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노력 및 비용을 들인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그 자료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해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셋째,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임무위배행위로써 스스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하는바 회사 직원이 영업비밀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으로 반출했다면 그 반출시에 업무상배임죄의 기수가 되나, 사무처리자나 제3자가 어떠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바 없다면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311 판결 등 참조).

그런데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파일을 수집·전송한 것은 이 사건 파일 내에 회사 회장의 자동차경기장 관련 사적인 지출내역이 있는지 확인해 노조 설립 후 그 부분에 대해 교섭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또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회사에 다른 자료를 요구해서 노조의 교섭활동을 하는데 사용할 목적이었고, 각 파일은 피고인을 비롯한 노조간부 3명만 회사 사무실 내에서 같이 보았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준비기간을 거쳐 2011년 7월12일경 피고인이 부위원장이 돼 회사 내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던 점, 피고인이 이 사건 파일을 네이버 개일 이메일로 전송한 후 다시 외부로 유출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점, 피고인이 회사의 경쟁업체로 취업하려 한 정황을 찾아볼 수 없는 점, 또한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파일을 자신의 재산상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했다고 볼 정황도 없는 점을 종합해보면, 이 사건 파일의 유출행위로 회사에게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이 발생했다고 해도, 이 사건 파일의 전송으로 피고인이나 제3자가 어떠한 재산상 이득을 취득했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가 없다고 판시했다.

3. 결론

경찰이 애초 이 사건 파일의 전송행위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불기소의견을 제시했음에도, 검사는 이를 뒤집어 업무상배임죄로 기소했다. 피고인 등이 삼성에버랜드 기숙사 정문 앞에서 노조신문을 배포하려 한 행위에 대해 공동주거침입죄로 기소한 사안(수원지방법원 2012고정1511 사건/무죄선고)과 연계시켜볼 때, 삼성노동조합의 핵심인물이던 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이 사건 기소는 노동조합의 핵심인물을 축출하고 노조활동을 봉쇄하려는 삼성의 의도에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개인 이메일로 전송한 이 사건 파일은 영업비밀도 아니고,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지도 않으며, 이 사건 파일의 전송으로 어떠한 재산상 이득을 취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의 업무상배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삼성노동조합의 핵심간부에 대한 회사의 의도적인 고소와 검사의 표적(?)기소에 제동을 걸었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대한 상식적인 심사가 돋보이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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