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폐쇄 기간에 업무에 복귀한 노조원이 공장 안에 갇힌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구사대로 강제동원돼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면 업무상재해라는 판정이 나왔다. 지금까지 청구성심병원이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사례처럼 노조원이 구사대에 의해 폭행당하고 감시와 차별을 받아 정신질환이 발병해 산재로 인정받은 적은 있었지만 반대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9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에 따르면 최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지난해 8월 '중증의 우울성 에피소드'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 A(50)씨의 산재요양신청을 받아들였다. A씨의 정신질환을 업무상재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성기업에서 30여년간 일한 A씨는 지난해 5월18일 회사가 부분파업 2시간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하자 같은달 29일 파업대열에서 나와 업무에 복귀했다. 기장이던 그는 "책임 있는 고참들이 나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순수한 뜻에서 업무복귀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를 기다린 것은 감금된 상태에서 진행된 살인적인 노동이었다. A씨는 지난해 5월30일부터 7월19일까지 51일 중 49일을 출퇴근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근무했다. 지회에 따르면 그는 업무복귀 첫날에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5시간30분을 일했다. 이어 공장 탈의실에 스티로폼을 깔고 눈을 붙였다가 다음날인 5월31일에도 12시간30분을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측은 "공장 밖에 있는 파업 참가자들이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며 작업현장 출입문에 시건장치를 별도로 설치했다. A씨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했다. 특히 구사대에 동원되면서 쇠파이프를 들고 동료 조합원들과 대치하는 상황을 감내해야 했다.

이후 A씨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심각한 불면과 초조·불안증세에 시달리다 수 차례 자살시도를 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지난해 8월 중증의 우울성 에피소드 진단을 받았다. 현재 1년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음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이상철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노무법인 이유)는 "이번 판정은 직장폐쇄 기간에 구사대로 억지로 동원되고, 공장에 고립된 상태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발병한 정신질환에 대해 사용자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아들의 자살시도와 입원치료로 충격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온 A씨의 어머니는 이달 6일 운명하셨다"며 "직장폐쇄가 한 가정을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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