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16일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월 한국노총 임원선거 1차 투표에서 선거인단 과반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며 파란을 일으킨 지 1년6개월 만이다. 정치방침에서 비롯된 조직갈등이 결국 이 위원장의 무릎을 꿇렸다.

한국노총 산별연맹 위원장과 지역본부 의장 27명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비공식 간담회를 열었다. 회의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용득 위원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건강상 이유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소집될 대의원대회에서 공식 사퇴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노련·식품산업노련·의료산업노련 등 산별연맹 위원장 3명과 경북·대전·서울 등 지역본부 의장 3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6인 위원회’가 대의원대회 개최 날짜 등을 조율해 집행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한국노총 안살림을 위한 집행권력이 사실상 산별·지역 조직으로 넘어간 셈이다.

위원장 사퇴 결정을 부른 내부갈등은 정치방침에서 시작됐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하고, 같은해 12월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야권통합정당(민주통합당)으로의 지분참여’를 결정한 뒤 내분을 겪어 왔다.

특히 정치방침을 결정한 대의원대회의 효력을 두고 법적 분쟁까지 불거지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이후 한국노총은 사실상 둘로 쪼개졌다. 이용득 집행부를 중심으로 정치방침에 따라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정치방침의 효력을 문제 삼으며 새누리당과 친분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맞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2월 한국노총 66년 역사상 처음으로 정기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그 뒤 각종 의결기구 회의가 성원 미달로 열리지 못했다.

이용득 집행부의 대외 정치행보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하고, 한국노총이 공식 지지한 김한길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가 낙선했다. 이는 이용득 집행부의 집행력 누수현상을 부채질했다. "수권가능한 정당 참여를 통해 반노동자 정권을 심판하겠다"던 정치방침은 힘을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지역 대표자들은 이 위원장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대표자들의 서명이 담긴 사퇴요구서가 집행부에 전달됐다. 결국 이날 이 위원장의 사퇴발언까지 나왔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자리를 옮길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이 위원장직에서 물러날 경우 규약에 따라 수석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 현 집행부의 임기가 1년6개월이나 남은 만큼 곧바로 보궐선거 국면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한국노총 임원선거가 정치방침의 향방, 나아가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형식적으로 보면 대의원대회 의결사항인 현재의 정치방침은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유지된다. 하지만 정치방침을 둘러싼 그간의 내홍이 깊은 데다, 일부 산별·지역 대표자들이 새누리당과의 친분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치방침의 효력이 유실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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