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와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는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이뤄 냈습니다. 이 합의만 지켜진다면 외환은행의 독자생존은 물론 직원들의 고용과 처우도 지켜 낼 수 있습니다.”

김기철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 위원장은 19일 “전 직원의 힘을 모아 합의사항이 철저히 이행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조합원들은 지난달 초만 해도 하나금융이 내정한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어 지부와 하나금융은 윤 행장의 출근을 3일 앞둔 지난달 17일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사항에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론스타 먹튀 시비'와 '산업자본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부와 하나금융도 두 가지 쟁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부는 이번 합의에서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은 물론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보장까지 약속받았다. 은행 간 인수합병(M&A) 관련 합의내용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역대 어느 합의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그동안의 은행 인수합병과 관련한 합의내용을 돌아봤을 때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지부의 합의가 노조와 직원에게 가장 유리한 내용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지부도 “은행 인수합병 투쟁 사상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은행권 인수합병 중 진일보한 노사합의

은행권 노조들은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론스타 문제를 완전히 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외환은행지부가 질긴 싸움 끝에 독립경영 보장과 고용안정·처우개선이라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5년 이내에는 합병을 추진할 수 없고, 그 이후에도 합병과 관련한 협의를 하도록 합의문에 명시한 것이다. 지부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대해 “5년이 지나더라도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합병논의 자체를 진행할 수 없도록 한 장치”라며 “필요성이 없다고 여겨지면 지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지속적인 독립경영도 가능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부는 독립경영 보장과 관련해 하나금융지주로부터 △노사관계·인사·재무·조직 등 경영활동 전반에 대한 간섭 불가 △집행임원은 외환은행 출신 과반수 유지 △외환은행-하나은행 교차발령 금지 등 구체적인 사항을 보장받았다.

지부는 특히 "인수·매각 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우려를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직원의 평균임금 격차가 컸기 때문에 인수·매각 과정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의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지부는 이를 막기 위해 △인위적 인원감축 금지 △영업망 확대 △임금체계 유지 및 급여·복지후생제도 등 불리한 변경 금지를 합의문에 명시했다.

신한-조흥, 구조조정 금지 합의에도 명퇴 시행

지부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 낸 셈이다. 하지만 앞날이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인수합병 역사를 보더라도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사례가 더 많다. 2003년 조흥은행이 신한금융지주로 매각될 당시 금융노조 조흥은행지부는 파업을 벌인 끝에 독립경영 보장과 인위적인 구조조정 금지를 약속받았다.

신한금융과 조흥은행지부는 △3년간 독립법인 유지(이 기간 최대한 독립경영 보장) △인위적인 인력감축 금지 △신한은행과 동수가 참여한 통합추진위원회를 거친 통합 여부 논의 등에 합의했다. 당시 조흥은행지부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했던 박세용씨는 “투쟁과 파업을 하면서 고용과 독립경영을 약속받고 합의문에도 명시했다”며 “합의문을 작성할 때는 약속이 이행될 것으로 믿고 안심했는데, 이후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조흥은행을 인수한 후 두 차례 명예퇴직을 통해 총 3천930명의 조흥은행 직원을 내보냈다. 게다가 2년이 지난 뒤부터는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착수했다.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박씨는 “신한금융 쪽에서는 자발적인 명예퇴직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구조조정이었다”며 “지부는 합의문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구체적인 이행·점검 노력 지속해야"

조흥은행과 외환은행 사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조흥은행의 경우 매각 당시 심각한 경영부실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태였다. 반면 외환은행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1조7천245억원의 순이익을 낸 우량은행이다. 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할 만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수은행과 피인수은행 간 복지수준 등 처우나 조합원 의식이 달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조흥은행 직원 중 상당수가 신한은행과의 합병에 찬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한은행의 임금·복지 수준이 조흥은행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조흥은행과 달리 외환은행 직원들은 하나은행과의 통합에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표했다. 외환은행이 하나은행보다 급여수준이 높다 보니 독자생존의 열망이 컸다. 하나금융 입장에서는 외환은행 직원의 급여수준이 높다는 것 자체가 구조조정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임금·복지수준만 높은 게 아니라 생산성도 높았다. 외환은행은 지난해 1~3분기 순이익을 직원수로 나눈 1인당 생산성(1억9천만원)이 하나은행(1억1천300만원)을 웃돌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은행 간 인수합병은 주로 잘나가는 은행이 못 나가는 은행을 흡수한 역사”라며 “과거 사례만을 갖고 외환은행의 앞날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지부가 맺은 합의문에 명시된 ‘독립경영 보장’이라는 문구를 과도하게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립경영’이라는 표현을 선언적인 의미로 해석할 경우 하나금융이 이를 뒤집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합의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부가 독립경영을 구성하는 세부요소를 명확히 정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외환은행 법인을 5년간 놔두는 것과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구체적인 항목을 정해 놓고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으면 무엇이 독립경영을 침해하는 것인지 분별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핵심은 하나·외한은행지부 간 상호협력

결과적으로 ‘문서’와 ‘현실’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은 외환은행지부의 몫이다. 이와 관련해 2004년 2월 금융노조 씨티은행지부(당시 한미은행지부)는 씨티그룹과의 합병 과정에서 상장폐지 금지와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포함해 5개월간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노조의 요구가 반영된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미은행지부는 이듬해 4월 재투쟁에 돌입했다. 합의 이행 과정에서 기존 한미은행 조합원들을 차별하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부는 파업·태업을 포함해 12개월간 싸웠다. 합병 과정에서의 투쟁보다 수위가 높았다. 진창근 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은 “외환은행지부는 합의서 채택으로 이제 막 싸움의 물꼬를 튼 셈”이라며 “합의 과정에 쏟아부은 노력으로 제2, 제3의 투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하나은행지부와 외환은행지부가 상생의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하나금융이 두 은행 간 임금격차 등을 이유로 통합을 앞당기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어느 한쪽 혹은 모두의 처우를 악화시킬 개연성도 있다.

유주선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은행 상호간 독립경영을 유지하면서 조합원의 고용·임금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조끼리 반목하기보다는 협력을 통해 상생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금융노조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고 기존의 합의내용이 이행되는지 감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