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행정부가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갈지자’를 그리는 와중에 사법부가 "도급을 가장한 대기업의 사내하청 고용관행은 불법"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현대차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사내하청 사용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생산시설 같은 제조업은 작업의 특성상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 가진 의미와 파장을 네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게재순서]
1. 제조업 불법파견, 8년 논쟁 마침표 찍다
2. 발등에 불 떨어진 현대차
3. 자동차업계 다음은 철강·조선·전자업계, 그리고?
4. 문제는 간접고용,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도급이냐, 파견이냐를 둘러싼 법정다툼이 지난달 23일 마침내 마무리됐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씨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어 파견 후 2년이 지난 후부터 최씨와 현대차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판시했다.

도급의 외피를 두른 근로자파견은 그동안 우리나라 고용시장을 왜곡시키는 주범이었다. 그 중심에는 불법파견 쓰면서 법을 조롱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법을 집행하고 올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고용노동부와 법원도 있다. 도급과 파견을 둘러싼 시비가 이토록 길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린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4년 "도급 아니면 전부 파견"=2003년 3월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이른바 ‘식칼테러’ 사건이 터졌다. 원청 관리자가 월차 요청을 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인 세화산업 노동자의 아킬레스건을 식칼로 찔렀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현대차의 사내하도급의 폐해가 공장 밖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사건의 근원을 파헤치다 보면 파견 문제와 맞부딪히게 된다.

우리나라에 근로자파견 제도가 도입된 것은 98년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근로자파견에 대해 "파견사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한 후 고용관계는 유지하면서 해당 노동자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에 의해 종사하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일한 노동자에 대해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서로 다른 파견제도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중간착취 금지’ 조항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아 까다롭게 적용된다. 파견법은 파견이 가능한 업무와 파견기간을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제조업은 이러한 근로자파견 허용업종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실제로는 근로자파견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 갔다. 당연히 사회문제가 됐다. ‘식칼테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결국 노동부는 2004년 9월에서 12월까지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에 대한 불법파견 점검에 나섰고, 그 결과 127개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9천122명의 노동자에 대해 "전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98년 파견법이 시행된 뒤 노동부는 관련 고시와 사내하도급 점검지침(2004년 7월)에 따라 도급의 조건을 규정하고,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파견으로 봤다. 노동부는 도급의 징표를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으로 나눠 정의한 다음 도급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두 파견으로 보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검찰은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단해 송치한 사건을 잇따라 불기소 처분했다. 이로 인해 도급과 파견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논란이 불거졌다.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사건 중 현대하이스코(2006년 12월)·라마다호텔(2006년 11월)·하이닉스(2006년 12월) 등 대기업 관련 사건들이 줄줄이 불기소됐다. 노동부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 역시 검찰에서 2년 동안 시간을 끌다 2006년 무혐의 처분됐다.

◇2007년, 종합해 판단해 보니 모두 도급?=같은 사안에 대해 정부부처 간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노동부와 법무부·검찰은 파견과 도급의 구별에 대한 공동지침을 만들었다. 2007년 4월 발표된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이 그것이다.

새 지침은 무엇이 파견인지를 규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택했다.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의 정의에서 사업주의 실체 판단요소와 지휘·명령권에 관한 판단요소를 끌어왔다. 그 결과 파견의 범위가 아주 협소해졌다. 노동부와 검찰은 사용사업주 등의 지휘·명령에 대한 판단에 따라 도급·파견관계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지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작업배치·변경 결정권 △업무지시·감독권 △휴가·병가 등의 근태 관리권 및 징계권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권 △연장·휴일·야간근로 등의 근로시간 결정권 등 5개 판단기준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이 2006년 발행한 '파견법상의 주요 쟁점 해설'에서 제시한 기준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노동부의 기존 지침보다 대폭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초 노동부는 파견·도급 판단기준을 파견법 시행령에 넣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재계와 지식경제부와 법무부의 반대로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

새 지침을 적용하자 불법파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자취를 감췄다. 노동부는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어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합법도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KTX 여승무원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노동부는 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여부 재조사에서 “불법파견의 측면도 있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적법도급”이라고 판단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정부의 조치도 미흡했다. 2004~2005년의 경우 사법처리와 행정처분 비중이 절반을 넘었지만 2006년 들어 사법처리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부분 시정조치로 끝났다. 기업들의 불법적인 고용관행을 정부가 방조한 셈이다.

◇2010년, 실제 사용자는 누구?=노동부와 검찰의 근로자파견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은 발표된 지 두 달 만인 2007년 6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7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현대차와 하청업체 사이의 도급은 사실상 근로자파견이며,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인 자동차공장 조립업무는 파견금지 대상으로 불법”이라며 지침과 전혀 다른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흐름생산방식의 특성상 생산라인을 따라 여러 단계의 가공·조립공정이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므로 각 공정은 독립적일 수 없다"고 밝혔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사용하는 생산방식에서 과연 적법도급이 가능하냐는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법리는 최병승씨 사건에서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2010년 7월22일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핵심은 사내하청 고용형태를 파견으로 볼 것인지, 도급으로 볼 것인지 여부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가 현대차 소유의 설비를 사용하면서 원청의 작업지시서에 의해 단순·반복 업무를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원청이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소유하고 하청노동자의 작업량과 작업방법·작업순서를 결정했고, 하청의 시업과 종업·휴게시간·야간연장근로·작업속도를 결정하는 이상 사내하청업체는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직접 받는 파견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청업체가 현장관리인 등을 세워 작업지시를 해도 원청의 결정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동부와 검찰이 마련한 도급·파견 구분기준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지점이었다.

◇2012년, 확산되는 불법파견 판결=현재 법원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재판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현재 대법원 결정만을 남겨 놓고 있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김준규씨 등 4명은 차체·엔진공장뿐만 아니라 서브라인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 냈다.

이들 외에도 1천941명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574명의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집단소송을 내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가 2004년 불법파견 판정 이후 적법도급으로 전환했다고 밝혔음에도 지난해 9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또다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자동차 생산시설은 사내하도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판결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동어반복적인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의 남은 쟁점

◇개인에 대한 판결?=소송 당사자가 누구든 불법파견 고용형태라는 사실관계는 달라지지 않으므로 현대차 사내하청에 모두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

◇의장공정·혼재라인만 해당된다?=원청의 직접 지휘명령을 받았다면 공정에 관계없이 파견일 가능성이 크다.

◇근속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적용되지 않는다?=파견법상 고용의무나 고용의제는 적용하기 어렵지만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임금차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오는 8월부터는 개정 파견법이 적용돼 불법파견에 해당하면 즉시 원청에 고용의무가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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