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겸직을 놓고 벌이는 설전이다. 전쟁은 수장끼리 맞붙어 치열하다. 선전포고는 이채필 장관이 했다. 인터뷰와 간담회에서 그는 “노조가 특정정당과 통합선언을 하고 노총 위원장이 특정정당의 최고위원을 겸직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선진 외국에서 노조와 정당은 상호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정당과 노조의 통합이나 노조 주요 간부가 정당의 고위당직을 겸직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민주통합당과 함께하기로 한 한국노총의 결정에 대한 이채필 장관의 노골적인 망언과 흠집내기는 그만큼 노총의 정치적 결단이 강력하다는 방증”이라고 맞받았다. 전쟁은 법적 시비부터 한국노총 사업예산 삭감 논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설전이 노조의 목숨줄까지 위협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조간부의 당직 겸직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노조 정치활동은 민주주의 역사 발전의 산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실장

이채필 장관과 새누리당의 한국노총 폄훼 발언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독일노총과 스웨덴노총은 정당과의 정책연대로 정치에 참여했다. 영국노총·브라질 노총·폴란드 자유노조는 노조가 직접 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했다. 노조의 정치 참여나 노조간부의 당직 겸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노조 간부의 당직 겸직은 글로벌 스탠더드다.

노조의 정치활동은 민주주의 역사 발전의 산물이다.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최고위원 자리는 원내에 진출하는 당직이 아니다. 최고 의결기관인 회의체에 참석해 노동부문 대표로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다. 조합원을 대변하는 노총 위원장이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조합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장관과 새누리당의 발언은 한국노총을 흔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공격하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 권혁태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노조 정치활동, 최소한 자주성은 지켜야”

권혁태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노동계의 정치활동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하고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제도와 규범·상식이란 게 있다. 노조가 모든 방식의 정치활동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연대나 특정 정당 지지·선거운동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을 포함한 모든 방식이 법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노조의 자주성은 지켜야 한다. 조직 통합을 결의하고 주요 간부들이 당직을 겸하며 일정 지분을 확보해 당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노조와 당을 동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의 정체성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

한국노총은 지금의 선택이 과연 조합원을 위한 것인지, 장기적으로 노조나 노사관계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노총 내부적으로도 이미 논란이 되고 있지 않은가. 당직 겸직을 두고 외국사례는 있지는 없는지 의견이 분분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문제다. 정당과의 통합, 당직 겸직과 같은 노조의 정치활동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 이수봉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이채필 장관 발언은 빗나간 선민의식의 발로"

이수봉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노조 간부의 당직 겸직은 노조활동의 연장선에서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당이라는 것이 노동의 문제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할 경우도 있고, (노동에 대해) 전문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당에서도 노조간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노조 입장에서도 대리인을 통한 의견개진보다는 당직을 맡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그래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따라서 겸직하는 것은 필요에 따라 가능하다.

최근 (이용득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직 겸직과 관련한) 이채필 장관의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노동자는 영원이 종으로 살아야 한다는 빗나간 선민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현재 정당 구조는 직능별 비례대표제가 아니기 때문에 계급구조를 올바르게 대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당이 지역을 중심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산업구조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직능별 비례대표를 통해 정당 구조 속에서 일정한 권력 구조로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과도기적으로 당직을 겸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정치의 노사관계 개입 우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노조가 조합원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의 정치활동 방향이나 방법 역시 노총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다만 노조활동이 너무 정치적으로 흐른다면 노사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노조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

몇몇 노조간부가 당직을 겸직할 수는 있지만 노조가 정당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 노조가 정당에 참여하려면 그만큼의 부담을 져야 한다. 당과 노조가 한 몸으로 움직인다면 법으로 보장된 노조의 각종 위원회 참석을 금지해야 한다. 지금 한국노총의 정치활동이 그런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당 참여보다는 느슨한 정치연대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경영계도 노동계와 대화를 할 수 있다.

특히 경영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조간부의 당직 겸직이나 노조의 자주성 훼손 같은 문제는 아니다. 정치가 노사관계에 개입해 노사자율을 훼손하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 노사관계가 왜곡되고 자율해결 능력도 떨어뜨릴 것이다. 노동계도 이런 점을 유의해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

▲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

“헌법정신이고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문제”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

당직 겸직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누구든 정치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 헌법정신이다. 노조간부가 정당 겸직하는 것도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국가에서 규제할 문제가 아니다.

노조와 정당이 취약할 때 결합하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노조가 추구하는 정치적 역할이 쉽게 반영되고 전달될 수 있고, 정당 역시 지지세력을 얻을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덩치가 커지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특히 어느 한쪽에서 한쪽의 자율성을 제약하면 피차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정치가 노조의 포로가 되거나, 노조가 정치에 종속될 경우가 그렇다.

지금처럼 일정한 시한을 두고 실험해 보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 실험의 와중에 한국적인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노조 활동이 정당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한다면 당직 겸직을 해 볼 만하다.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첩경이라는 뜻이다. 정당에 진출한 뒤 노조를 대변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대비책이 있어야 노조가 이용당하지 않는다. 당직을 맡는 노조간부에 대해 노조가 소환권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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