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지난해 10월3일 미국 내 6천800여개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자리 창출 기금’을 모금해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대출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자 국민일보가 이틀 뒤 5일자 25면에 슐츠의 사진과 함께 이를 미담기사로 크게 실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17일 이 지면에 스타벅스가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매장에서 벌이는 지저분한 노동착취 실태를 스타벅스 탄생의 이력과 함께 소개했다. 그 글의 제목은 ‘악어의 눈물’이다.

엊그제 한국판 악마의 눈물이 나왔다. 같은 롯데재벌이 소유한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가 공동으로 대학생 1천명에게 최대 1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는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대출금은 내년부터 향후 2년간 균등분할해 상환할 수 있고 총 3년간의 이자는 전액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가 부담한다.(한국일보 6일 23면)

지난 7일 신청 시작 하루 만에 4천600명이 한꺼번에 몰려 대박을 쳤다.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는 서류 미비자 및 심사기준 미달자 등을 감안해 10배수인 총 1만명까지 접수할 계획이고, 업무를 대행하는 IBK기업은행은 한꺼번에 신청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해 서버를 두 배로 늘렸단다.

3년 전 청년유니온이 조사한 결과 전국에 흩어진 1천여개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의 알바들은 절반 정도가 최저임금 미달이었다. 이들에게 쓰는 돈은 인색하면서 언론빨 타는 홍보행사인 무이자 대출사업에는 재빠르다.

그러나 신청자들 입장에선 무이자 등록금 대출받기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우선 가계소득이 연소득 4천만원 이하여야 하고, 은행 신용등급도 따진다. 뭐니 뭐니 해도 10대 1의 경쟁을 뚫어야만 지원을 받는다. 그래도 로또보단 훨씬 양호하니 신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업이 재벌 기업의 이미지 관리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 덕분이다. 지난해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을 무더기 연행하고 억압한 것도 정부였고, 감사원이 12% 넘게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내다봤는데도 손 놓고 있다가 올해 대부분의 대학이 2~4% 수준으로 찔끔 인하하도록 유도·방관한 것도 이명박 정부다. 그러니 재벌들이 그 빈 틈을 노리고 이런 사업을 대놓고 진행한다. 참 '비즈니스 프렌들리' 한 정부다.

어디 그뿐이랴. 재계 13위의 한화 재벌그룹의 주력사인 (주)한화가 지난 주말 주요 주주들의 횡령 등의 혐의로 상장폐지를 발표하자 이명박 정부가 뽑아 놓은 한국거래소 임원들은 주말 주식거래가 중단된 5일 회의를 열어 ‘상장폐지 실질심사 제외 결정’을 내려줘 6일 월요일부터 주식거래 중단없이 영업을 할 수 있게 했다. 당연히 특혜논란이 불거졌지만(한국일보 6일 6면),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다.

지난해 횡령·배임 발생 공시를 한 기업 10개의 대부분이 매매정지 기간을 거쳤다. 보해양조는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에서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이끌어 내기까지 2개월 가량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마니커는 한화처럼 실질심사위까지 가지 않았지만 2주간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발 빠른 이번 결정이 한화에 대해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만 재벌을 편드는 게 아니다. 유력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암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싸워서 안전보건공단의 조사를 이끌어 냈지만, 조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조선일보는 7일자 12면에 <국내 반도체 공장서 발암물질 극미량 검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작은 제목은 이명박 정부의 입을 빌려 <정부 “인체에 영향 미미”>라고 친절하게 달았다.

신문은 암으로 죽아 간 사람의 유족들이 이번 조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런 건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니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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