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특례개선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현행 26개에서 10개로 줄이는 공익위원안을 채택했다. 노사정 합의는 실패했지만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상 추진력 있게 입법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는 노사합의만 있으면 연장근로가 제한되지 않는다. 현행법에서는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는데 특례업종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이 업종에서는 근로감독 걱정 없이 노동자들을 무제한 돌릴 수 있다. 당연히 특례업종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사용자에게 폭탄이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오랜 바람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공익위원안에서 특례업종으로 남게 된 노동자들의 시름은 여전히 깊다. 노동자들은 특례업종 축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근로시간 특례조항 폐기하고 노동시간 상한제 둬야”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정책부장

▲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정책부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채택안에는 연장근로가 일상적인 육상운송 등 운송업과 사회복지서비스업을 포함한 10개 업종이 특례업종으로 유지됐다. 유지업종 가운데 버스노동자는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8시간, 택시노동자 1일 평균 16시간, 철도노동자 24시간 맞교대 주 60시간에 이른다. 보육노동자와 간병노동자의 경우 1일 평균 12시간, 화물노동자도 1일 평균 13시간을 일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안전(교통·운수)과 공공서비스(보육·간병)와 직결된다. 장시간노동은 피로누적과 산업재해·교통사고로 이어져 공공 안전과 물류수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근로시간 특례조항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악명을 갖게 한 대표적인 법조항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 특례조항이 아니어도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법제화돼 있다. 무제한 노동시간 연장을 가능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특례조항이 유지될 필요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EU 지침의 경우 노동시간을 연장하더라도 상한선을 두어 규제하고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 특례조항 폐기와 함께 노동시간 상한선(1주 48시간, 1일 10시간 이상 노동금지)을 둬야 한다. 또 화물·간병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고 이들 업종에 대한 특례조항 폐지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보건업 특례업종서 제외, 긴급재난 특례규정으로 해결해야"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보건업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특수성을 갖고 있지만, 24시간 3교대 근무제로 운영돼 응급상황에 대비한 인력운용 시스템이 항상 가동된다. 일반 수술은 통상 근무시간 내 수술시간을 예약해 놓기 때문에 연장근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응급수술도 당직근무자와 저녁 근무자가 있고, 휴일도 콜 당직제가 있는 등 항상 응급상황을 대비해 두고 있다. 따라서 상시적인 초과근로 대상 업무도 아니고, 응급상황에도 인력운영 시스템이 가동돼 특례업종으로 묶어둘 이유가 없다. 다만 지진 등 긴급 재난이나 특수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해서는 ‘긴급재난시 근로시간특례’를 별도로 규정하면 된다.

보건업은 의사와 간호사·의료기술직 등 70여개 직종이 일하고 있다. 이중에는 응급상황과 무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직종도 많다. 또 경증환자나 일반 외래환자를 돌보는 의원도 많다. 설사 보건업을 특례업종으로 유지한다 해도 의료기관을 세부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보건업 전체를 특례업종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보건업의 연장근로는 병원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병원 인력수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인구 1천명당 병원 인력수가 영국과 노르웨이는 평균 23~24명이다. 프랑스는 19명, 독일은 14명, 미국은 17명이다. 우리나라는 5명 정도로 절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하다. 이에 따른 보건업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심각하다. 정부는 현장에서 근로시간 특례조항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그 실태부터 조사해야 한다.

“특례업종 불가피하지만 연속휴게시간 보장해야”

오지섭 전국자동차노련 정책실장

▲ 오지섭

전국자동차노련
정책실장

버스운송업은 고속·시내·농어촌버스 등 업종별로 노동시간을 일괄적으로 규제하기 힘들다. 1일 2교대제를 도입한 시내버스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하루 8시간(최장 12시간)을 준수할 수 있지만 운행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고속버스와 인력이 부족한 농어촌버스와 같은 경우에는 전일제 근무가 많다. 전일제 버스운전사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16~18시간에 달한다. 현재로선 근로시간 특례업종 지정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버스운전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전일제 근무자도 최소한의 휴게시간을 보장해 격일 근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교통사고 방지 등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다. 제도 개선을 논의하면서 하루 최소 10시간을 쉴 수 있는 연속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례업종 지정이 불가피하더라고 연속휴게시간을 보장한다면 장시간 노동에 대한 보완이 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실태조사를 통해 버스운전사의 업종별 노동시간을 파악하고 노동시간 상한선을 설정,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전체적인 노동시간을 축소해야 한다. 노동시간 상한선을 단계적으로 줄인다면 그에 따라 투입돼야 할 인력과 재정의 규모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 버스운전사의 노동시간은 근로기준법으로 일괄 규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권 근기법 개정보다 장시간 노동 근본대책 필요”

유주선 금융노조 정책부위원장

금융노조 정책부
위원장

정부가 장시간 노동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먼저 묻고 싶다.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또 얼마나 많은 장시간 노동을 하는지, 국가와 국민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금융권 노동자를 비롯한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족하다. 실적 등 직무 스트레스에 고통 받고 있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제조업 노동자 못지않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금융권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문제는 과도한 성과문화로 인한 과당경쟁과 인력부족에서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일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경하고 경영진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는 근로시간 특례인정 업종 규제 완화와 같은 소극적 대책이 아닌 노동시간 규제 및 감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과 같은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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