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0일 ‘업무상질병 판정절차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재해 현장조사를 강화하고 산재 판정절차를 개선하는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간 공단의 재해 조사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현장조사 없이 보고서에 의존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부의 개선방안에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운영 정상화 방안도 포함됐다. 그동안 질판위는 여러 가지 질병을 동시에 심의하면서 한꺼번에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 논란을 초래했다. 이번 개선방안에는 근골격계·뇌심혈관계·내과질환으로 나눠 질병을 심의하고 1회당 심의건수를 15건 이내로 조정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정도 조치로는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산재 신청 노동자들에게 지웠던 업무상질병 입증책임을 근로복지공단이 부담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선방안과 관련해 노사정은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산재보험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업무상질병 판정절차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노동부 개선방안 부족한 점 많아” 

이미경

민주통합당 의원

지난 1년간 끌어 온 노사정TF가 이번에 ‘업무상질병 판정절차 개선방안’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개선방안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그동안 노동계가 요구해 온 질판위의 현장조사 강화, 노사추천 위원 비율 증가, 1회당 심의건수를 15건 이내로 조정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현장조사를 강화한다고 했으나 이를 위해 확보해야 할 자료의 목록을 보니 입증자료로서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현장에 몸만 간다고 의미가 있나. 질판위에 올려야 할 자료 목록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업무상질병의 공단 입증책임과 질판위의 독립성 보장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업무상질병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 유해인자를 취급·노출됐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업무상질병에 한해서는 사회보험의 성격상 보험기관인 공단이 질병의 원인을 연구하고 그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

질판위는 전문성 측면에선 많이 보완됐지만 당초 질판위 출범 배경인 독립성과 객관성 확보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산재신청과 입증에서 여전히 접근성이 높지 않다. 따라서 질판위의 독립성 확보와 공단의 업무상질병 입증책임 전환이 개선방안의 핵심 내용이 돼야 한다.


“객관성과 전문성 확보, 누구나 승복할 수 있게 개선"

김경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

업무상질병 판정절차 개선방안은 누구나 판정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 과정을 통해 업무상질병 여부를 가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산재 불승인율이 높기 때문에 절차를 바꿔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개선방안의 또 다른 핵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를 강화해 업무상질병 판정에 대한 노동자의 입증부담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현재 319명의 근로복지공단의 현장조사 인력이 내년 1월 중으로 30명이 추가로 증원될 예정이다.

질판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지금까지 여러 질병을 동시에 심의하면서 전문성 논란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근골격계와 뇌심혈관계질환·내과질환으로 나눠 심의하도록 체계화했다.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구체화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만성과로의 산재인정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노사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쉽지 않다. 노사가 각각의 주장만 앞세우기보다는 성의 있는 논의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해답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찾기를 바란다.


“업무상질병 여부 입증, 정부가 해야”

임성호

한국노총
산재보험국장

업무상질병 판정절차만 놓고 본다면 절차 개선의 종착역은 질판위의 해체가 아닐까. 필요충분한 재해조사와 노사참여에 기초하고 투명성이 보장되는 자문의사 제도라면 위원회 체제를 굳이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위원회 체제가 판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으로 신속한 요양과 재활을 가로막고, 공정성과 전문성에서도 시비를 피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일과 생활의 양립에서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업무상질병을 칼로 가르듯 판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납득할 수 있고 예상이 가능한 잣대, 즉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은 또 다른 종착역일 것이다. 나아가 업무상질병이 아니라는 입증을 산재보험기관의 재해조사와 의학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일하는 이들의 요양과 재활, 생활보장 수준이 산재 판정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질판위, 산재심사 위한 독립기구 돼야”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정부가 내놓은 이번 개선방안은 노사정이 함께 만든 것이다. 노동계의 의견도 반영됐다. 이번 개선방안으로 그동안 18%에도 못 미쳤던 현장 재해조사가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또 형식적인 산재심사와 산재신청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항변권도 보장되지 않았던 질판위 운영구조도 개선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개선방안은 이명박 정권 들어 급격히 상승한 산재 불승인율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산재불승인 남발의 또 하나의 원인인 직업병 인정기준의 획기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산재신청 노동자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이 법제화돼야 한다. 노동자가 진단서와 산재신청서를 내면, 산재 입증은 근로복지공단이 해야 한다. 공단이 ‘업무상재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한 모든 경우를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질판위가 독립기구로 분리돼야 한다. 지금처럼 공단 산하 기관으로 존재하면, 공단의 지침을 포함해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질판위가 공단에서 벗어나 산재심사를 위한 독립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재해 조사인력 충원하고 전문교육 강화해야"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팀장

산재 인정의 기초가 되는 현장 재해조사를 강화하고 근로자를 위해 판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이번 개선방안의 핵심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판정위원을 늘려 심의건수를 줄이고 전문가인 산업의 참여를 늘리는 등 전반적으로 질판위 판정에 대해 객관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노동계가 요구한 질판위 위원장 민간전문가 임명에 대해서도 개방형 직위제로 운영할 수 있도록 기초 골간을 마련해 앞으로 노사가 논의를 통해 진행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의 기피권 보장을 위해 제기되고 있는 질판위 위원 명단 공개에 대해서는 협박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질판위의 생명은 공정성인데, 자칫 질판위 위원이 회유와 협박 등의 압력으로 균형을 잃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주치의와 자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일치하면 질판위 심의대상에서 제외시키자는 노동계의 요구는 사실상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질판위의 역할과 의미를 없애자는 것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노동부의 개선방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려면 공단 재해 조사원의 인력을 늘리고, 이들이 재해조사에 대한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노사정 모두가 인정하는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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