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됐다. 한진중공업이 ‘인위적 구조조정 중단’ 약속을 깨고 정리해고를 추진하면서 금속노조 한진중지회가 전면파업을 시작한 지 무려 11개월 만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박창수 전 지회장이 올랐던 크레인에 다시 오른 지 309일째다. 그 긴 시간 그들의 몸은 녹초가 됐지만 정리해고라는 괴물은 오롯이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1년은 쉴 새 없이 흘렀다. 전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는 다섯 차례나 부산으로 달려갔다. 각계의 단식이 이어졌다. 사회의 공분이 극에 달했고, 조남호 한진중 회장은 국회 청문회 자리에 서야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재고용 권고안을 내 노사합의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살아서 내려왔다. 한진중 사태 1년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을까.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바람이 맺은 결실”
이창근 희망버스기획단 대변인

 

이창근

희망버스기획단
대변인
 

무엇보다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안전하게 내려오게 된 것을 환영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희망버스에 참가자들의 염원 중 하나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무사귀환이었다. 그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하고 무사하기를 기원했던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마음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한진중 노사의 합의안에 대해서는 우리가 평가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망버스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한진중 사태 해결과 김진숙의 무사귀환을 요구했던 것이지 교섭의 주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희망버스는 한진중 사태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에서 비롯됐지만 한 사업장의 문제만을 대변했던 것은 아니다. 희망버스의 목표는 한진중 사태 해결뿐만 아니라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였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나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법제화 문제까지 나아갔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다.

한진중 사태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희망버스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달 말께 개최할 예정인 6차 희망버스를 계획대로 추진할지도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다.


“98년 정리해고 체제 종식, 머리 맞대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기본적으로 이번 합의는 국회 권고안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권고안이 나온 지 한 달이 됐지만 늦게나마 노사가, 특히 노조가 대폭 양보를 해서 합의가 이뤄졌다. 대승적인 결단을 해 준 점, 높게 평가한다. 노사협의로 상황이 정리될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투쟁을 했다. 모든 이유를 떠나 김 지도위원과 농성을 함께한 3명의 조합원이 내려온 것에 대해 국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비록 내려왔지만 정리해고라는 현실,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고공에 남아 있다. 그가 내려오면서 정리해고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체제는 98년부터 시작돼 10년이 넘게 지속됐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게 정리해고를 제어하는 게 아니라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강화하면서 해고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우리 사회에 던졌고, 여론화했기 때문에 이제 민주진보세력과 여·야·정 모두가 10년 정리해고 체제를 종식시키는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들에게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2차 희망버스 날짜가 잡혔을 때였다. 고 이소선 어머니는 희망버스를 몹시 타고 싶어 하셨다. 부산에 직접 내려가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동지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문제 때문에 내가 만류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 전태일 열사 곁으로 가셨다.

어머니께서 한진중공업이 타결돼 김진숙 지도위원과 농성자들이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봤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살아서 잘 내려왔어. 살아야 해. 살아서 투쟁해야 해. 그래서 정말로 고마워. 고마워”라고 하셨을 것 같다. 고생한 농성자들과 정리해고자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셨을 것이다.

기나긴 싸움 끝에 한진중공업 투쟁이 일단락됐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쌍용자동차처럼 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지 않도록 감시하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다시 투쟁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투쟁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본다. 투쟁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여론에서 멀어질 때 등불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배우 김여진씨와 희망버스기획단이 등불의 심지를 태우는 기름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의 김진숙과 농성 동지들, 그리고 희망버스는 노동운동을 넘어 국민들에게 연대의 문제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다들 정말 고생하셨다.


“정리해고 사회적 중재매뉴얼 만들어야”
임영일 경남대 교수(사회학)

 

임영일

경남대 교수
(사회학)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우리는 한국 재벌총수의 전횡이 노사관계를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목격했다. 현행법에서 정리해고는 대단히 추상적이지만 해고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경영권을 폭넓게 해석해 정리해고를 대부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특히 노동위원회 중재제도의 무능함은 이번 한진중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안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다. 노동위의 합법적인 중재제도가 있음에도 이번 사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다시 정리해고로 갈등을 심각하게 겪는 사업장이 발생해도 한진중 사태처럼 사회정치적인 이슈로 만들지 못하면 합리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중재안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사회적 중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경기가 좋을 때 과잉투자했다가 불황에 줄도산하는 조선산업도 마찬가지다. 산업 구조조정이 예상될 때 노조는 고용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사전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때다.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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