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국 곳곳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산업시설과 방위시설 작동이 중단되고, 국민생활도 멈췄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일어나서는 안 될 후진적 사태”라고 질타했다. 원인은 무엇일까.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한 천재라는 주장도 있고, 정부의 무차별적인 낙하산 인사와 정부의 잘못된 수요예측 등 인재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계는 10년 전부터 진행된 전력구조개편에서 원인을 찾는다. 전력대란 재발방지를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예상 적중한 전력대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최용혁 전력노조 대외협력실장

전력노조
대외협력실장
“전력산업 분할매각, 전력대란 불러온다.” 이 구호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전인 99년 전력노동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실로 나타난 전력대란이라는 비극을 보면서 우리 주장이 옳았다고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한순간의 중단도 없이 전력을 공급한다는 전력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전력산업은 국가경제의 등뼈와 같은 기간산업이다. 이런 공공서비스는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는 순간 파멸의 길로 빠진다. 전력·가스·상수도·의료·공항·도로·항만이 그렇다. 당연히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그런 공공서비스들은 모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 공공노동자들은 이런 공익성이 높은 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목청 높여 주장해 왔다. 그런데 돈의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정부도 삼켜 버렸다. 거의 모든 공공부문에 돈의 논리가 스며들고 있다.

지난주 전력대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제2의 전력대란이 뒤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의료·항공·가스대란도 연달아 우리 앞에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자본과의 싸움에서 계속 패한다면 말이다. 이것은 명백한 이념투쟁이다.

 


"9·15 정전대란은 예고된 인재"
이종훈 발전노조 정책기획실장(발송배전기술사)

이종훈

발전노조
정책기획실장

국민을 볼모로 삼은 참극이며 경쟁과 효율의 미명으로 추진된 잘못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곪아 터진 이번 정전대란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인재였다. 전력공급 중대성과 일관성을 무시한 채 전력거래소·한전·발전자회사로의 분리, 전력수급의 관리감독을 책임진 지식경제부와의 소통부재, 그리고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함에 따라 무너진 발전예비력 확보로 빚어진 실패였다.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뤄지는 동시성을 갖는 사회공공재다. 유기적이고 일관된 위기관리 체계와 빈틈없는 전력공급대책이 절실하다. 섣부른 경쟁과 효율증대를 이유로 갈라놓은 전력산업에 대한 통합논의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경제적 이익계산으로 부족한 전력공급 예비력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전력수요와 공급관리는 눈가림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정적 전력예비력 확보는 발전현장의 평화로운 노사관계에 기초한다. 연임을 위해 점수 따기에 급급해 노조를 탄압하고 복수노조 제도 시행 전 어용 기업별노조를 만들어 현장을 분열시켜서 남은 것은 갈등과 반목일 뿐이다.


“당장 구조개편 어렵다면 협의체라도 고민해야”
이화수 한나라당 의원(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이화수

한나라당 의원

이번 정전사태는 지식경제부의 관리감독 시스템 부재가 한몫했다. 지난 15일 당일 오전 11시에 이미 ‘당일 최대전력 수요 예측량’인 6만400만킬로와트를 초과한 6만420만킬로와트였고, 오후 2시에는 6만626만킬로와트를 기록해 위급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가 순환정전 사실을 1시간46분이나 늦게 공개했는데도 지경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전력수급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전력산업 효율성을 개선한다고 정부가 2001년 실시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전력은 전기의 유통만 담당하고, 전력거래소가 전기운영을 총괄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발방지를 위해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가 재통합된다면 이 같은 정전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의 유기적 관계를 위해 시급하며 당장 통합이 힘들다면 협의체 운영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겨울철은 지금보다 더 전력사용량이 증가한다. 실제 3년 전부터 최대 전력사용량이 겨울에 발생하고 있다. 전력당국은 겨울을 앞두고 실질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분할경쟁 폐해가 전력대란 원인”
이호동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대표

이호동

에너지노동사회
네트워크
공동대표

기본적으로 전력수급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정부는 수요예측이 잘못했다는 둥 지엽적인 이유를 드는데 큰 틀, 즉 전력계통 운영에 실패한 것이다. 전력산업을 운영하는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 포함한 8개 관련 기업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비상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됐다. 9월15일 전후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데, 발전 5개사 사장단이 모여 계통운영 대응이 아니라 발전노조 파괴논의만 했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반드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의한 분할경쟁의 폐해다. 분할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이미 예고됐던 재앙이다. 때문에 공급만 늘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급 중심의 전력산업을 수요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기후변화가 영향을 준 것이니 이에 대비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간 전력당국은 시민사회 진영에서 개최한 토론회에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단기적인 관리도 중요하지만 태도 역시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에너지원 분산해 사용해야"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이번 정전사태의 원인은 발전소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기후변화 때문만도 아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느 한 가지 원인만 부각된다면 그에 따른 대책이 왜곡될 수 있다. 정부가 단편적으로 정전사태를 보고 그것을 염두해 대책을 마련한다면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늦더위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럼 늦더위가 아니었다면 안 일어날 사건이었나. 그렇지 않다. 이례적으로 추위가 일찍와서 정전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원인이 날씨만은 아니다.

발전소가 부족해서 발생한 일도 아니다. 운영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현재의 발전총량을 봤을 때 15일 정전사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발전소를 더 짓자는 대책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에너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재발방지 대책으로는 단기적인 대안과 장기적인 대안을 구별해 고민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에너지 절약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올 겨울부터 준비해야 한다. 예전에는 연탄보일러나 석유난로ㆍ기름보일러 등 다양한 연료를 이용해 난방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전기로 쓰는 추세다. 전기장판ㆍ전기난로로 겨울을 나는 독거노인은 정전이 나면 생존을 위협받는다. 에너지 빈곤층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전기 대신 다른 연료로 교체해 주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농촌에서도 심야전기를 많이 쓰는데, 석유나 가스 등 효율이 높은 보일러로 교체하는 사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장기적인 대안으로 모든 것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려는 움직임과 그러한 정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적절하게 분산해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