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사였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갈레 던 라즈(41)씨는 지난해 9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왔다. 대구 달서구의 한 이불솜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로 일하던 그는 올해 3월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화장실을 갈 때도 감시하듯 따라온다”고 토로했다. 결국 그는 지난 6월8일 네팔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자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갈레 던 라즈씨는 친구의 기숙사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을 제한한 현행 고용허가제의 맹점이 초래한 죽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송출비리와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 양산을 방지하고 임금체불과 인권침해 등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17일로 시행 7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제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서울·인천·경기·충청·경상 등 전국 5개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931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10명 중 4명(40.2%)이 입국하는 데 1년 이상 결렸다. 이는 대기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급행 브로커’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국 대기기간 장기화는 송출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48.2%가 미화 기준 2천달러 이상을 송출비로 지불했다.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집계한 공식 송출비용인 501달러의 4배에 육박하는 액수다. 캄보디아(37.1%)·태국(28.9%)·인도네시아(21.8%) 노동자들도 공식 비용의 2배 정도를 송출비용으로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입국 후 노동실태도 열악했다. 입국 전과 입국 후 근로계약상의 노동조건이 달라졌다는 응답이 58.3%에 달했다. 달라진 내용은 월급(14.5%)·노동시간(15.7%)·작업내용(10.0%)·기숙사제공(8.1%)·식사제공(11.4%)·휴게시간과 휴일(14.5%) 등으로 노동조건 전반에 걸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숙식비·숙박비 공제 같은 이중고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 논란도 잇따랐다. 응답자들은 욕설(78%)·문화 차별(43.9%)·신체 폭행(26.8%)·성희롱(13.5%)을 겪었다고 답했다.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온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으로 인해 이직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도 상당수였다. 조사에 응한 이주노동자 중 61.6%는 사업장 이동을 희망하고 있지만 사업장 이동제한 조항에 발목이 잡힌 것으로 나타났다. 체류기간 3년 이하의 노동자의 76%, 5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의 82.1%가 사업장 이동을 희망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처우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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