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혜성 같이 그가 등장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그는 사실 생소한 사람이기도 했다. 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정동영(58·사진)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선택했을 때 노동·진보진영 인사들의 반응이었다. 노동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가 왜 갑자기?
정 최고위원은 의심과 기대의 눈길 속에서 5대 노동현안(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현대차 사내하청·전북버스·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조사 및 청문회를 요구했다. 수많은 노동현장을 분주히 쫓아다녔다. 최근에는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키기 위해 그의 말마따나 ‘물불 안 가리고’ 뛰고 있다. 지난 1·2차 희망버스를 지키는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왜 그가 거기 있냐고.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최고위원을 만났다.

‘진보클릭’이라 불러 달라

- 요즘 진보적인 원내·노동현장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좌냐 우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민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복지·평화가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정신이다. 복지의 핵심은 노동이다. 노동권이 억압받고 생존권이 흔들리는데, 그 현장에 다가가는 것이 정치인의 할 일 아닌가. 현장에 가면 문제의 본질이 있고 해답도 있다.”

- 일각에서는 ‘좌클릭’이라고 표현한다.
“좌란 표현보다는 진보라고 해 달라. 세상의 진보, 우리사회의 진보를 향해 힘을 보탤 생각이다. 우리사회의 좌클릭을 향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진보를 향해서란 표현이 더 부드럽다. 진보클릭이라고 불러 달라.”

- 환노위를 선택했다. 이유는.
“고민을 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당의 노선으로 제시했다. 애초 역동적 복지국가를 당헌과 강령에 새겨 넣자고 했으나 반대파가 있어 절충한 표현이 보편적 복지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몸을 던져야 했다. 하지만 먼저 있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아니구나 생각했다. 참모들과 토론한 뒤 환노위로 가자고 했다.”

외로운 길, 기꺼이 전방공격수로

- 막상 와 보니 외롭지 않나. 비인기 상임위인데.
“민주당 의원이 3명이다. 서로 안 가려고 한다. 숫자가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너무 적어서 힘에 부친다. 중진의원이라고 (점잖게) 있을 형편이 아니어서 초선 역할도 해야 한다. 사실 전방공격수를 할 입장은 아닌데 급하다 보니 자주 출격하게 된다.”

스스로 ‘출격’이라고 표현할 만큼 정 최고위원은 노동현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환노위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게 그다.

- 노동현안과 관련해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있다. 그간 활동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긍정적인 활동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청문회를 만든 것이다.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키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성과다. 하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은 상정도 못했다. 한나라당이 봉쇄를 했기 때문이다. 아쉽다. 대안은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노조법 상정 못해 아쉬워”

- 구원투수란 표현은 괜찮나.
“한진중공업 현장에서는 ‘퀵서비스’라고 불린다. 먹을 것, 김밥 좀 갖다 주려는데 용역이 막아선다. 그래도 우리가 나서면 낫지 않겠나. 비옷·깔개·전등도 올려 주고. 전기공급을 위해서도 애를 썼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요청했다. 명백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소통해야 한다, 전기로 보온하고 소통하기 위해 휴대폰 배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안전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어젯밤(13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배터리를 안 올려 줘서 (남은 배터리가 부족해) 통화도 못하고 책도 신문도 안 보내 준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싸웠고 더 이상 절망감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전화하니 배터리가 거의 없어 통화 못한다고 끊고. 민주당 추천 장향숙 인권위 상임위원에게 빨리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인터뷰 현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전화했지만 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그는 “인권위와 회사가 (배터리를) 올려 주기로 합의했는데, 소통도 못하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진숙 연설을 듣던 ‘그 순간’

- 1·2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는데. 당시 심경이 궁금하다.
“그동안 한진중공업은 7~8번 다녀왔다. 지난달 12일 새벽 3시30분, 1차 희망버스가 갔을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들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 만입니까. (…)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 저녁이면 땀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그 소박한 일상을 지켜 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김진숙)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김진숙 연설문 중에서)

“그때 눈물 흘리고 흐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연설을 들었지만 가장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저것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의 힘이란 것이구나.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힘이 있다면 저 사람을 살려야겠다,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김진숙을 살아 내려오게 할까. 그 전에도 안타까웠지만 그날 새벽 3시30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그 뒤 나를 물불 안 가리고 움직이게 한 힘이었다.”

“한미 FTA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 ‘진보클릭’의 전제는 민주정부 10년의 반성과 성찰에서 시작된 것 같다. 과거의 정동영과 지금의 정동영은 무엇이 다른가.
“진보의 기준은 두 가지다. 우선 남북 문제다. 그 진보적 실천에서 1등은 정동영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과 9·19 선언(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IAEA로 복귀를 약속한 것,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당사자다. 내가 만든 성과물이라고 자부한다. 또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삶의 질에 관한 문제다. 그 하나가 노동 문제다. 비정규직은 폭증하고 삶의 질은 열악해졌는데 지난 10년의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는 점을 반성한다.”

그는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막는 데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미 FTA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질서에 적극 편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비판적 문제의식이 있었으면서도 빨려 들어갈 때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미 FTA는 무역의 자유화를 넘어 한국의 법·제도·관행을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지금도 너무 미국화돼 있는데, 또 신자유주의 종주국처럼 하라고? 그 부분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진보클릭’에 대한 두 가지 시선

- 한나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어떻게든 막아 낼 것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제도가 잘돼 있다. 무역조정지원제도(TAA)가 대표적이다. 반면 우리는 야당의 힘만으로 막기가 힘들다.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정 최고위원의 ‘진보클릭’에 대한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선거공학적인 대선전략의 일환이거나, 진정성 있는 행보거나. 그의 생각은 어떨까.

“성찰의 시작은 대선 패배가 아니라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08년 9월이었다. 당시 미국의 듀크대에 몸 담고 있었는데,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시작했다. 용산참사가 터졌을 때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역동적 복지국가 깃발 아래 야권 통합해야”

그는 “불철저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내가 제시한 슬로건은 ‘가족행복시대’였다. 최대불행 시대를 막고 최소불행 시대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연장선에서 일자리·사교육·보육·건강보험·주택·노후 문제에 대한 정책적 보완을 통해 가족행복시대가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그 정도 갖고 될 일이 아니었다. 불철저했다. 문제의식의 절반밖에 안 됐던 것이다. 국가운영원리를 뜯어고쳐야 한다. 특히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그렇다. 역동적 복지국가로 말이다. 토건(토목·건설) 말고 사람, 감세 말고 증세로 가야 한다. 과거 종합부동산세를 기술적으로 봤다. 지금은 거의 무력화됐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전면적 조세혁명으로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돈 많이 벌면 세금 많이 내야지.”

- 올해 말까지 야권 단일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민주당과 외부 양심·시민사회세력을 합쳐 내년 총선 전에 연합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깃발을 가지고 해야 한다.”

-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민주당이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 더 열어야 한다.”

- 민주당 안에서 (양보를 전제로 한 야권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많은데.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하다. 손학규 대표의 입장과 행동이 중요하다. 지도부에서 야권통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진보정당 역시 먹힌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열어야 한다. 진보정치를 10년 기다릴 것이 아니라 2013년부터 실현하자는 것이 2013년 체제 담론이다. 평화국가와 복지국가, 이것이 진보정당의 가치 실현 아닌가. 대부분 실현가능한데 왜 10년, 20년을 기다리나. 민주당은 지금 구성으로는 정권을 잡기 힘들다. 잡아도 성공하기 힘들다. 열어야 한다. 진보적 민주당이 돼야 한다. 그 다음 통합정당이 돼야 한다.”

“보편적 복지 이어 재벌개혁으로”

정 최고위원이 최근 주목하는 의제 중 하나는 ‘재벌개혁’이다.

“7월13일은 민주당으로서는 획기적인 날이다. 최고위원회에서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특위’(119특위)를 만들겠다고 결의했다.(119특위는 20일 공식 발족했다) 이를 통해 재벌개혁을 하겠다. 대한민국에는 2개의 119가 있다. 소방서와 헌법 119조2항(경제민주화 조항)이다. (후자는) 서민·중산층·자영업자가 무너졌을 때 작동해야 하는 가치다. 하지만 그동안 잠자고 있었다. 지난 4년간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4년간) 30대 재벌의 문어발 확장으로 계열사가 두 배로 늘었다”며 “반면 고용은 별로 늘지 않고 감세와 환율로 기업을 밀어 주고 저금리로 서민의 주머니를 털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민가계는 빚쟁이가 되고 대기업은 머릿수가 늘었고, 정부는 노동탄압과 친재벌정책을 한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오는 전당대회에서 재벌개혁 조항을 당 강령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훈(민주노총)·이용득(한국노총) 위원장과 함세웅 신부·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조정래 작가 등 노동·시민사회·학계·법조계·정당의 저명인사 200명여의 제안으로 구성된 희망시국회의는 22일과 24일 잇따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희망시국회의를 기획부터 조직까지 주도적 역할을 한 이가 정 최고위원이다. 그의 요청에 200여명이 희망시국회의에 동참했다. 희망시국회의는 한진중공업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실질적 교섭재개를 목표로 하면서 희망버스의 평화적 보장, 한나라당의 청문회 재개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22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희망시국회의 200 제안 기자회견’에서 “희망시국회의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하고 김진숙 지도위원과 해고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며 “이제는 정부와 여당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자의 눈물 닦는 정치할 것”

- 정 최고위원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지난해 국회에서 의원선서를 할 때 이야기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다. 학교 때 읽은 라인홀트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나오는 대목인데, 맞는 것 같다. 노력해 왔지만 불충분했다.”

그는 민주당의 담대한 진보로의 변화, 내용적으로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펼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편적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를 강령에 못 박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진보적 민주당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의 역사 속에서 내가 주창한 가치가 민주당 깃발에 아로새겨지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정동영, 그의 전방위적인 ‘진보클릭’은 아직도 보여 줄 게 많은 것 같다.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동영 최고위원은 전주 덕진을 지역구로 둔 3선(15·16·18대) 국회의원이다. MBC 기자로 활약했고, 뉴스데스크 앵커로 전 국민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96년 15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열린우리당 당의장·통일부장관·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거쳐 민주당 17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대선 패배 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서울 동작을)과 맞붙었으나 낙선했다. 같은해 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8개월간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목도했다. 귀국 뒤 4·29 재보선에서 공천파동을 겪은 뒤 전주 덕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해 10월 민주당 최고위원이 됐다.
18대 국회에서는 그의 전공 분야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올해 2월 환경노동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에게 물었다. 노동계와 인연이 있냐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MBC노조 창립멤버였다. 기자 40명이 87년 12월9일, 회사 지하식당에서 노조 설립총회를 했다. 언론사에서는 한국일보에 이어 두 번째였고, 방송사에서는 최초였다. 당시 노조위원장은 아니었지만 최고참 기자여서 노조 배후인물로 찍혀 많이 시달렸다. 그게 정치참여의 계기가 됐다. 노조만으로는 재갈이 안 풀리는구나,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도 날밤 새운 적이 없었는데 요샌 한진중공업에만 가면 밤을 새우게 된다”며 “3차 희망버스에서도 밤을 새울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연윤정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