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경제위기가 다시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그리스·아일랜드가 다시 디폴트 상황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리고 현재 유럽의 경제위기는 흔히 유럽의 주변부라 불리는 이들 국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경제규모로 유럽 3위와 4위인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위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 나라의 신용도를 보여 주는 국채가격이 이탈리아·스페인 모두 폭락하고 있다. 두 국가는 당장 다음달 8월과 9월에 각각 1천100억유로(약 143조원·이탈리아), 400억유로(약 52조원·스페인) 규모의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정부의 월 평균 지출액이 680억유로, 스페인이 402억유로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국가들의 정부예산 수준에서 국채를 상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즉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 발행이 어려우면 매우 심각한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와 같이 국채가격이 폭락해서는 채권 발행이 쉽지 않고, 설사 발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후 이자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해법은 재정 긴축이다. 그리스가 지난달 30일 2015년까지 280억유로의 지출 축소, 500억유로 규모의 공공부문 매각 계획을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스페인은 이달 13일 3.8%의 예산 삭감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2014년까지 재정 긴축을 통해 400억유로를 마련하는 예산안을 준비 중에 있으며, 영국도 올해 2014년까지 810억파운드의 예산 감축을 핵심으로 하는 재정 긴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들의 재정 긴축 중심의 경제위기 대책은 성공 가능한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이들 국가들의 위기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사실 정부의 방만한 지출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은행들에 1조파운드(약 1천760조원)를 지원했고, 지금까지도 은행들의 부실 채권을 어마어마하게 짊어지고 있다. 영국의 재정 문제는 은행 부실채권이 문제지 정부지출이 문제가 아니다. 재정 긴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는 2008~2010년 가장 적은 정부지출을 한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베를루스코니는 이 시기에 균형재정을 강조하며 오히려 노동자·서민에 대한 복지지출을 줄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소비감소와 그에 따른 세수감소였고 결국 정부부채가 늘어난 것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올해 초부터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본가적 역발상(?)으로 노동자에게는 세금을 늘리고,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스페인은 또 어떤가. 2000년대 유럽에서 가장 큰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낸 스페인은 부동산 대출에 가장 적극적이던 저축은행들에게 300억유로 이상의 구제금융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반대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연금을 축소하고 정리해고 여건을 완화해 대규모 생존권 위기를 야기했다. 그 결과 부실 저축은행들은 더욱 많은 빚을 쌓았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 정부재정이 더욱 위태로워졌다. 정부지출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어 세입을 줄이고, 투기은행에는 돈을 퍼부은 것이 재정위기 원인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정부부채를 떠안게 된 이유는 정부와 국제금융자본이 공모해 그리스 국채 시세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싼 값에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JP모건 같은 국제투기자본은 그리스 국채를 인수한 뒤 이에 대한 과대평가를 내놓아 막대한 매매차익을 누렸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터지자 모건스탠리 같은 신용평가기관(투기자본의 채권회수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 추심기관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을 앞세워 채권 상환 협박을 일삼았고, 결국 부도사태에 이르렀다. 재정지출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투기자본과 공모해 정부재정을 운영했던 금융화된 정부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럽 정부들의 재정위기 원인과 대처방안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바로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앞에서 이야기한 국가들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모두 실행하고 있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스페인이나 영국 정부처럼 부동산 투기에 빠진 은행들을 살리는 데는 주저 없이 돈을 퍼부으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처리를 위해 지난 3년간 6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고, 이것도 모자라 얼마 전 1조5천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반해 2009년 쌍용차 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1원도 쓰지 않았고, 올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공권력 투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탈리아 정부처럼 경제위기 전후로 노동자·서민 지원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최저임금을 동결시켰고, 4대강 사업을 위해 각종 복지성 예산을 삭감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빈곤해졌고, 가장 심각하게 실질임금 삭감을 겪었다. 여기에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역발상으로 부자감세까지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는 그리스와 같이 투기자본과 투기를 공모하는 데 열심이다. 그리스의 상대가 국제금융자본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상대는 토목건설자본이라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4대강 사업에 따른 막대한 정부재정 몰아주기, 그리고 주변지역 건설투기 붐 조성, 아파트를 지어 분양되지 않으면 정부가 사주는 부당지원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도 가지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하반기 재정 건전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다. 유럽 상황으로 보건데 큰 경제위기로 노동자·서민들이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현 정부에 대한 단호한 투쟁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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