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대로 왕복 8차선 도로 곁 펄럭이던 비닐이며 은박자리. 사람 서넛 가끔 지나던 인도 구석, 서초경찰서 벽에 기댄 농성장은 남루했다. 침낭 두어 개 임자 없이 뒹굴어 노숙 처지를 알렸다. 현수막 두어 개 펄럭여 사정을 전했다. 볕에 그을려 까맣던 손으로 주인장(46)은 믹스커피를 건넸다. 무서울 건 별로 없다고. 다만, 길 가다 문득 홍삼 파는 '정관장' 간판을 볼 때면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했다. 성희롱 가해자 이름과 비슷해서라고 했다. 2년여를 참고 버티다 울화가 치밀어 말을 꺼냈다. 해고 통보가 따랐다. 14년을 바친 일터였다.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했다"는 이유가 거기 붙었다. 싸움 어느덧 길어 1년이 가깝다. 다니던 회사는 폐업했다. 아니, 이름을 바꿨다. 가해자는 여전했다. 현대차 본사엔 가까이 갈 수 없어 서초경찰서 들머리에 자릴 잡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야로 교대해 가며 집회신고에 몰두했다. 빈틈이 없었다. 원직복직 돌아갈 틈이 따라 없었다. 고급 세단이 그 앞을 내달렸다. 경찰 버스가 지나쳤다. 먼지가 풀풀. 하지만 밥심이라고, 보다 못한 사람 여럿이 9일 도시락 싸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잡곡밥에 유기농 상추·두부조림·호박전에 김치가 가지런해 성찬이었다. 하나같이 맛깔나니 음식을 준비한 박승희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이 으쓱, 자랑을 좀 한다. 밥심보다 관심이라고, 지원대책위원회 사람들 다음주 '도시락데이'를 웃으며 기약했다. 농성장 기댄 담벼락에 빨간 장미가 많이도 피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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