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적이면서도 수세적인 조직 전략을 만들어야죠.”
박유기(45) 금속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노조의 복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어진 대답이다. 공세적으로 조직 확대에 나서되, 제2노조의 출현이 우려되는 노조 내 취약 사업장에서는 조직 방어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박유기 위원장을 만났다.

- 위원장 임기의 3분의 2가량이 지났다. 요즘 어떤 활동에 집중하고 있나.
“요즘 지부 대의원대회가 많다. 직접 찾아가 격려사도 하고 올해 사업계획도 설명한다. 한진중공업이나 대우자동차판매 같은 정리해고 사업장 문제도 챙겨야 한다. 최근에는 진보정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관련 비공식 모임에 자주 간다. 이러저러한 일정들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노조 사무실에는 거의 붙어있지 않는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쌍용차와 한진중·대우자판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정리해고 문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개입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 각 기업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리해고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의 대응은 무력해 보인다.
“최근에 발생하는 정리해고는 심각한 경영상의 이유에 따른 해고라고 보기 어렵다. 한진중은 해외공장으로 물량을 빼돌린 뒤 국내 노동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대우자판은 경영진이 부실경영으로 자동차판매권을 상실한 뒤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고 있다.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배짱을 부리면 노조로서는 마땅히 손 써볼 도리가 없다. 결국 정치권이 나서야 풀리는 문제다. 노동자의 고용이나 지역 경제 차원에서 정치권이 악덕사업주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전국민이 TV로 지켜본 2009년 8월6일 쌍용차 대타협이나, 해외공장이 확대돼도 국내노동자들의 고용은 보장하겠다던 한진중의 특별단협은 무용지물이 됐다. 노조의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치권을 견인해내기 위해 노동계가 최근 집중투쟁을 벌이고 있다.”

- 지난해 7월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 나온 뒤 금속노조는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상대로 공격적인 조직 확대에 들어갔다.
“판결이 나오고 금속노조의 조직화 목표는 3천명이었다. 그 정도는 돼야 실질적인 파업이 가능하다고 봤다. 조직화 측면에서 보면 목표에 미달했다. 투쟁 측면에 있어서도 노조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11월15일 돌발적으로 현대차 1공장 점거파업이 시작됐다. 단숨에 사회적 시선이 집중됐고, 투쟁 수위도 급격하게 높아졌다. 당시 점거농성이 장기화되면서 금속노조 책임론이 대두됐다. 책임이 있다면 노조 위원장인 내가 책임질 일이다."

- 2차 비정규직 파업까지 제기됐다가 실현되지 않았는데.
"점거농성이 마무리되고 2차 총파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때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간부들이 회사측 차량을 타고 외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빠르게 임원을 교체하고 이상수 전 지회장이 조계사 단식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다시 2차 파업의 분위기가 잡혀갔다. 지난달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1천여명이 참가했다. 이 정도면 다시 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 비정규직지회 재정 비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현대차 정규직들의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비정규 조합원들은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틈을 타 회사는 해고와 징계를 남발했다. 현재 울산비정규지회의 지도력과 집행력은 거의 무너진 상태다. 이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급선무다.” 

“패권주의 물들어가는 비정규 노조운동 안타까워”

- 비정규직지회의 재정 비리를 보면서, 비정규직 노조운동 지도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비정규직지회의 조합비 운용 시스템은 정규직지부와 많이 다르다. 어떤 하청업체는 현금으로, 어떤 업체는 계좌 이체로, 이도 아니면 지회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직접 돈을 받으러 다니는 상황이다. 재정 시스템이 주먹구구 식인데다, 지회 간부들도 돈 관리를 엄격하지 않는 게 문제다. 산별노조 차원의 신임간부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와 별개로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노동운동가들의 패권주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파를 가르고 선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비정규 노조운동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 노조운동가들은 자기 정파의 입장을 ‘원칙’이라고 전제하고, 다른 정파는 물론 상급단체나 정규직노조의 의견을 배제하는 배타적 경향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교섭으로 문제를 풀자는 제안에 “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그따위 교섭에 나가라고 협박하냐”는 비정규직 간부들이 적지 않았다. 대중적 조직은 대중의 요구와 이해에 기초해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특정 그룹이 원칙이라고 정한 기준을 조합원에게 주입하거나 관철하려는 것은 비성숙한 태도다.”

- 최근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 용역보고서가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고용 유연화에 따른 간접고용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고용유연화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무엇인가.
“원청회사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고용해 현장에 투입하는 방식은 없어져야 한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직접작업공정의 지원반 편성률이 7~9%에 이른다. 정규직이 교육에 가거나 출장을 가거나 할 때 7~9% 선에서 대체인력을 사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것이다. 단, 이러한 고용의 유연성은 직접고용의 원칙 속에 이뤄져야 한다. 임금수준과 복리후생에 차이를 둬서도 안 된다. 자본은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80%선에 달한다고 선전한다. 이는 틀린 말이다. 각종 상여금과 성과급, 의료비와 학자금 지원 같은 간접임금의 격차가 상당하다. 노동부 보고서에 등장하는 선진국의 예처럼 ‘동등처우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최근 금속노조는 ‘기업지부 2년 연장’을 결정했다. 박 위원장은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조직체계를 인위적으로 변동하는 것이 조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복수노조는 금속노조로 하여금 ‘수세적이면서 공세적인’ 조직화 전략을 찾도록 하고 있다.

- 기업지부 해소 논의가 다시 2년 뒤로 연기됐다. 기업지부를 해소하겠다는 약속은 박유기 집행부의 핵심 공약이었다.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산별노조가 기업을 넘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별노조 전환 이후 산별노조로서 교섭력과 투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노조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지금 당장 기존의 집행구조를 해체하고 지역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금속노조의 발전전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뛰어넘기 쉽지 않은 ‘사업장의 벽’”

- 7월부터 복수노조가 시행된다. 금속노조의 복안은 무엇인가.
“노사관계에서 노조에게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으면 ‘파업해서 잘못된 것을 깨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복수노조와 관련해 금속노조 산하 지부·지회를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에 포함시키지 말고 자율교섭 대상자로 인정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복수노조 시행에 앞서 노조 조직진단을 해본 결과, 대공장에 제2노조가 들어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노조는 회사 내 종업원 중 조합원이 과반수가 안 되는 곳을 찾아내 이곳에 제2노조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한다. 대구 상신브레이크나 경주 발레오만도처럼 회사측이 의도적으로 노조를 약화시켜 금속노조에서 탈퇴하도록 유도한 사업장에 다시 우리 조직을 확대시켜야 한다.
복수노조에 대한 대응은 수세적이면서도 공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조직을 잘 지켜내야 하고,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조직 확대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 산별교섭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별중앙교섭의 위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완성차지부들이 빠진 상태에서 언제까지 중앙교섭을 끌고 갈 것이냐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중앙교섭의 틀을 유지하면서 그 안으로 불참 사업장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태를 보면 중앙교섭에 나오지 않는 사업장을 상대로 ‘중앙교섭에 참여하라’는 공통의 요구를 갖고 공동파업에 갈 수 있느냐.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국면에서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기업의 틀을 뛰어넘는 논의 테이블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런 차원에서 자동차공업협회나 조선협회 등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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