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3월11일자로 단독보도한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는 세계 주요국 주요업체들의 최신 고용 트렌드를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유행에 한참 뒤처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노동부는 최종 보고서가 지난해 12월 제출됐음에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조사 결과가 촌스러워 꽁꽁 숨겨둔 것일까. 그리고 “파견 확대는 세계적 추세”라고 되뇌는 우리나라 경영계의 철 지난 유행가는 언제쯤 그칠 것인가. <매일노동뉴스>가 노동부 보고서에 등장한 일본·독일·프랑스의 간접고용 실태를 3회에 걸쳐 집중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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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순서]

1. ‘규제 강화’로 돌아선 일본
2. ‘고용 유연화’ 말고 ‘고용의 질’ 택한 독일
3. ‘철저한 규율’ 지키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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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자 독일 볼프스부르크 알게마인 신문(WAZ)에 눈에 띄는 기사 한 꼭지가 실렸다. 폭스바겐 노사 대표(사측 홀스프 노이만 노무인사 총괄이사·노측 베른트 오스트로우 사업장평의회 의장)가 올해 사업장협정을 통해 파견노동자 2천2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지난달 23일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폭스바겐 노사 대표는 1천250여명에 이르는 고등학교 졸업 예정 견습생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것에도 합의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5년간 5천~6천명에 이르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0월27일에도 볼프스부르크와 카셀 사업장에서 근무해 온 파견노동자 4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당시 노사는 ‘폭스바겐 산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의 투입조건과 보상에 대한 단체협약(2009)’을 통해 파견직과 기간제 노동자를 포괄한 비정규직의 투입 상한선을 ‘정규직 총수의 5%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독일은 파견노동자 사용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는 나라다. 72년 파견법이 도입된 뒤 파견근로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돼 지금은 건설업 일부를 제외한 전 업종에 파견직이 사용되고 있다. 파견기간 제한도 72년 법 제정 당시 3개월이었던 것이 2001년까지 순차적으로 연장돼 24개월까지 늘었고, 현재는 파견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다. 그럼에도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은 단체협약을 통해 파견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정규직화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폭스바겐의 파견직 정규직화

2009년 체결된 ‘폭스바겐 산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의 투입조건과 보상에 대한 단체협약’(폭스바겐 시간제 단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니더작센지부가 노동자를 대표해 교섭에 참여했고, 폭스바겐 주식회사와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가 회사측 대표로 참여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바로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다. 폭스바겐이 출자하고 볼프스부르크시와 폭스바겐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회사는 90년대 중반 지방정부와 기업의 노사가 힘을 합쳐 추진한 지역 혁신전략인 ‘오토비전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90년대 중반 독일의 자동차산업이 정체현상을 보이며 급격한 내수부진에 빠져들면서, 자동차 사업장이 들어선 지역사회의 고용위기도 심각해졌다. 이때 지역 내 실업률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폭스바겐과 시정부가 함께 추진한 것이 오토비전 프로젝트다.

손을 맞잡은 기업과 지방정부는 사업 아이디어 개발을 위한 혁신 캠퍼스를 설립하고, 지역 내 부품단지를 조성하는가 하면, 과학센터와 운동장·스포츠센터 같은 문화복지시설을 조성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생겨난 새로운 일자리를 구직자들에게 연결해 주기 위한 인력공급 종합서비스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세워진 회사가 바로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다. 이와 별도로 폭스바겐은 자매회사인 오토비전사를 설립해 인력파견 서비스를 분담하도록 했다.

국내에 수집된 자료 등에 따르면 두 회사는 2003년까지만 해도 함께 단체교섭에 참여했다. 2009년에는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만 참여했다. 하지만 산별노조가 체결한 협약이 전체 산업에 적용되는 독일의 산별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감안하면, 2009년 체결된 폭스바겐의 시간제 단협은 폭스바겐으로 파견된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폭스바겐, 정규직-파견직 임금격차 줄어

2009년 단협에 따르면 폭스바겐에 파견된 생산직 노동자는 최소 14.52유로의 시급을 적용받는다. 독일의 2대 파견사용자연합체인 iGZ와 BZA가 지난해 적용한 파견직 최저 시급(7.6유로)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오토비전사나 볼프스부르크사를 통해 폭스바겐에 파견된 노동자가 주 40시간씩 한 달(4주) 동안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에게 돌아가는 월급여(14.52유로×40시간×4주)는 약 2천320유로에 달한다. 총 22단계로 구분된 폭스바겐 정규직 임금 테이블 중 4등급(2천273유로)에 해당하는 임금보다 높다. 폭스바겐이 파견직 사용기간을 최대 36개월로 제한해 파견노동자들의 근속연수가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폭스바겐 정규직과 파견직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는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는 오토비전사의 사례가 등장한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폭스바겐은 오토비전을 통해 안정적이면서 즉흥적으로 인력을 제공받고, 오토비전은 고유한 경영확장을 시도한다”며 “인력서비스공급업체가 고유한 경영영업 목적을 가지고 전문업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한국의 자동차산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민간 인력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분석이다.

하지만 같은 현상을 두고 노동계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폭스바겐은 민간 파견업체의 인건비 낮추기 경쟁이 노동의 질이나 제품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토비전사나 볼프스부르크사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독일의 자동차업계가 ‘고용 유연화’보다는 ‘고용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를 위해 기업 스스로 파견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노력은 정규직화로 이어졌다. 실제 노동부 보고서에 등장하는 폭스바겐 홍보담당자는 “폭스바겐은 지난 몇 년에 걸쳐 파견노동자의 40%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밝히고 있다.

비용 경쟁 넘어 질적 경쟁으로 도약하려면

폭스바겐의 이 같은 행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하기 위한 독일 노동계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2000년대 초 독일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문제가 불거졌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특히 “과다한 비정규직 사용이 제품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경고음이 나오면서 사용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독일노동자총연맹과 파견사용자연합체인 iGZ와 BZA가 매년 파견직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것도 이 같은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다.

독일 금속노조 브라운슈바이크 교육위원을 지낸 이문호 워크인조직연구소 소장은 “독일 사회는 비정규직의 남용이 산업의 질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문제는 비단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이나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 차원에서 고려돼야 할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싼 인건비를 좇아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고용의 유연성이 불가피한 측면도 존재한다”면서도 “산업의 질적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적극적인 정규직화에 나선 독일 사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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