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3월11일자로 단독보도한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는 세계 주요국 주요업체들의 최신 고용 트렌드를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유행에 한참 뒤처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노동부는 최종 보고서가 지난해 12월 제출됐음에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조사 결과가 촌스러워 꽁꽁 숨겨둔 것일까. 그리고 “파견 확대는 세계적 추세”라고 되뇌는 우리나라 경영계의 철 지난 유행가는 언제쯤 그칠 것인가. <매일노동뉴스>가 노동부 보고서에 등장한 일본·독일·프랑스의 간접고용 실태를 3회에 걸쳐 집중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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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순서]

1. ‘규제 강화’로 돌아선 일본
2. ‘고용 유연화’ 말고 ‘고용의 질’ 택한 독일
3. ‘철저한 규율’ 지키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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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파견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하려면 지난 2008년 6월8일 발생한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도쿄 소토칸다 지역의 한 교차로. 2톤 트럭 한 대가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5명의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그 뒤 트럭은 교차로를 지나 맞은편 차선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와 접촉사고를 내고 멈춰섰다. 트럭을 운전하던 용의자는 차에서 내려 소지하고 있던 등산칼로 행인과 경찰관 14명을 연달아 찔렀고, 사건 발생 5분 후 출동한 경찰관의 권총 제압으로 체포됐다.

7명이 죽고 10명이 다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용의자는 당시 25살에 불과했던 가토 도모히로. 해고된 파견노동자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는 “생활에 지쳤다. 세상이 싫어졌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아키하바라에 왔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범행동기를 진술했다. 묻지마 살인사건으로는 일본 역대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이후 일본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이 끔직한 사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키하바라 살인사건과 파견촌

일본은 장기 침체와 실업증가 대책으로 99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파견을 전면 허용했다. 99년 파견허용업종을 열거한 포지티브 방식이 일부 파견예외업종만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됐고, 2003년부터는 제조업 파견이 전면 허용됐다. 이로부터 5년 만에 파견 문제는 일본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미국 금융회사인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경기침체와 실적악화는 일본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이른바 ‘리먼쇼크’ 앞에서 일본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파견직이 해고 1순위가 됐다. 계약만료 기간 따위는 무시됐다.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터져 나왔다.

같은해 10월2일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일본 도야마시에서 인권옹호대회를 개최하고, 정부에 보내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정규 고용이 원칙임은 물론, 기간 고용을 포함한 비정규 고용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며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사항이 담겼다.

2009년 1월 일본 노동·시민·사회단체도 들고 일어났다. 렌고를 비롯한 일본 3대 노조와 지역일반노조,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반빈곤네트워크’ 등은 천황궁과 의회의사당, 각 정당의 당사와 NHK건물에 인접해 있는 도쿄 히비야공원에 그 유명한 ‘파견촌’을 형성했다. 해고된 파견노동자 수백 명이 솥과 침구·텐트를 가지고 모여들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일본 후생노동성이 보인 반응은 놀라웠다. 후생노동성은 강당을 실업자들의 숙소로 제공했다.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해 관공서가 피난처로 이용된 적은 있지만, ‘경제 재해’ 피해자들을 관공서가 받아들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후생노동성의 한 간부는 2003년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했던 법 개정을 비판하면서 “당시 할복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는 취지의 사죄를 했다. 우리로 치면 고용노동부장관 격인 후생노동상도 2009년 1월5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조업에 대한 파견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반성

민주당 정권이 2009년 9월에 들어섰으니, 이미 자민당 집권시기부터 파견 규제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자민당 정부는 크게 두 가지 대책을 들고 나왔다. 하나는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파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권고였다. 여기서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의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일본의 기업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공개된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 보고서에 등장하는 닛산자동차의 파견 사용 중단 결정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닛산은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직 투입을 중단하고 기간제노동자를 직접고용해 투입하고 있다. 또 직접제조공정에 사내하청의 인력을 투입할 경우 파견법 위반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분리되거나 완전도급이 가능한 일부 간접부서에만 사내하청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의 사용자와 정부가 ‘사내하도급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자동차업체조차 직접생산공정 부서에는 사내하청 투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법 개정에 앞서 스스로 간접고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기업들의 모습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시정노력도 하지 않는 한국 현대자동차의 행보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사회의 파견 규제 여론은 제조업에 대한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 논의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19일 파견법 개정안이 일본 국회에 제출됐다. 개정안은 법이 정한 파견기간을 경과한 불법파견에 대해 고용간주 규정을 적용하고, 원칙적으로 등록형 근로자 파견과 제조업 파견을 금지했다.

파견 규제를 위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두 번째 방안은 해고된 파견노동자들을 위한 ‘취업·주거 패키지 서비스’였다. 일본의 파견노동자들은 대개 회사가 제공하는 사택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해고되면 직장과 주거공간을 동시에 잃게 된다.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위한 사회보장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취업·주거 패키지 서비스’ 실업부조 모색하는 일본정부

기본적으로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거의 유사하다.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호제도(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파견노동자의 경우 이 두 제도의 적용을 받기 어려운 ‘낀 세대’인 경우가 많다. 일본 사회 내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800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파견노동자다.

일본 정부는 정부 재원을 들여 이들을 구제하기 시작했다. 직업훈련과 직업교육을 받게 하고, 교육기간 동안 주거공간과 생활비를 지급했다. 우리 돈으로 1인당 월 300만~400만원이 이들의 생활비와 주거비로 지급됐고, 파견노동자들은 6개월간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관련 제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제도를 도입한 자민당 정부는 한시적으로 3년 동안 제도를 운용할 계획이었지만 2009년 9월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이 제도를 영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취업과 연계된 실업부조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파견촌 운동이 한창일 때 일본에 다녀온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파견노동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일본 사회의 움직임은 매우 확고하고, 노동유연화 주장은 ‘한물 간’ 취급을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동유연화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다양한 고용형태가 등장하고 있지만, 이럴 때 선진국들이 취한 태도는 ‘보호를 전제로 한 규제강화’라는 말이다.

은 연구위원은 “일본이 찾은 '취업을 전제로 한 생활보장 방안'은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실업부조를 무조건 부정할 게 아니라 한국정부도 고용과 생활이 연계되는 사회보장시스템 도입을 위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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