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점’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지난 1년여의 활동을 평가해 달라는 주문에 “겨우 낙제를 면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근차근 점수를 높여 가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올해는 80점, 내년엔 100점짜리 민주노총이 되겠다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24일 저녁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김영훈(44)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진정성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중하게 포석을 놓고 있는 중이란다. ‘간접고용 철폐’에 사활을 걸겠다는 그다.

‘60점’ 민주노총

- 임기 시작 1년여가 지났다.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매일노동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김영훈이 선정됐다.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1년이었다. 민주노총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적인 공격 속에서 진지를 지키고 사수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야 반격의 기회도 온다. 민주노총 내부의 무기력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 중요했다.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고 싶다.”

- 김영훈은 ‘젊은 위원장’이다. 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새 위원장, 젊은 위원장에 대한 프리미엄이 작용했다. 사람들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미지다.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용을 채우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정책을 돌파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점수를 매기자면 60점이다.”

- 낙제를 겨우 면했다고 평가했다. 올해는 몇점까지 올릴 건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오를 줄 누가 알았나. 그래도 히딩크는 ‘내 카드는 4강이었다’고 했다. 히딩크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설정하고 선수들에게 체력과 자신감을 주문했다. 지난해 한 일간지의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38%가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고, 그마저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 10명 중 4명은 민주노총을 노동자의 대변자로 인정했다. 민주노총이 내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에 동의하는 국민이 60%를 넘어 80%까지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는 80점, 내년엔 100점에 도전하겠다.”

포석 놓기까지 시간 걸리는 법

지난해 두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했다.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이 타임오프 제도를 앞세운 노조탄압에 저항했고, 황인화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불법파견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김 위원장은 전태일 40주기였던 지난해 민주노총이 실질적으로 계승해 나가야 할 내용을 두 명의 조합원이 보여 줬다고 했다. 노동악법 철폐와 비정규직 철폐가 그것이다.

- 100점으로 가기 위해 민주노총은 ‘다자 간 공조(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상설연대체·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범국민 운동본부(범국본)·진보정당 통합 추진이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복잡하다. 복잡해서 잘 안 되나.
“위원장이 범국본을 하자고 질렀다. 그러면 후속조치와 실행계획이 나와야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위원장이 내부적으로 숙성되지 않은 제안을 던졌거나, 위원장의 제안을 뒷받침하는 조직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나는 상설연대체나 범국본에 대한 내부 논의가 부족했었다는 지적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비전을 제시하면서 치고 나가는 것이다.”

- ‘범국본’의 풀네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민주노총 간부가 몇이나 될까. 범국본과 상설연대체에 대해 조합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쉽게 설명해 달라.
“오늘 범국본 추진 주체들 간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이 진행됐다.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범국본이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노동복지동맹’이다. 비정규직 문제, 무상의료·무상급식 같은 복지담론을 제기하되 노동중심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물론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못한 유목민 같은 모든 이들이 강력한 연대체를 구성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2012년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보다 구체적인 의제를 갖고 결집하자는 취지다. 상설연대체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상설연대체는 진보민중진영의 정치적 결사체다. 전선체로 가기 위한 전 단계다. 대선·총선 일정에 맞춰 가기보다는, 긴 안목으로 더 멀리 보고 가는 것이다.”

- 왜 ‘연대’에 집중하나 .
“진보정치 대통합까지 치면 사실은 내 활동의 절반이 연대다. 그래서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민주노총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잘했으면 민주노동당이 분열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설연대체도 진작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보다 광범위한 사회연대전략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반성과 성찰 속에서 연대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바둑고수들은 포석을 두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돌 하나 놓으면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사람들은 답답하다. 신중하게 포석을 두는 중이라고 이해해 달라.”

'처음이 아니라 더 어려운' 양대 노총 공조

김 위원장은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했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주변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주변의 우려도 불식될 것”이라며 신중론을 고수했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공조가 추진되고 있다.

- 최근 양대 노총 위원장이 조찬모임을 했는데.
“오늘(24일) 한국노총 대의원대회가 잘 마무리됐다고 하니 다행이다. 반노동 정부에 맞서 양대 노총은 물론 모든 노동자들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만 연대나 공조는 나름의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부는 ‘양대 노총 연대는 예전에도 있었는데 뭐 그리 어렵냐’고 한다. 하지만 처음이 아니라 더 어려운 것도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치는 것이 처음 만날 때보다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 민주노총은 공조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양대 노총의 공조는 정부의 반노동정책에 맞서 공동투쟁을 벌이기 위한 것이다. 개악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악된 노조법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2009년 일방적으로 공조를 파기한 것에 대한 한국노총의 분명한 입장이 나와야 한다. 한국노총이 오늘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미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책연대 파기만으로는 부족하다.”

- 양대 노총 공조 어느 선까지 가능하다고 보나.
“노동절 행사를 함께 개최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4·27 재보선에 대응하자는 얘기도 오갔다. 그에 앞서 어처구니없는 법안 상정이 우려된다.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이다.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법이다. 이 법을 막기 위해 한국노총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것으로 믿는다. 그런 투쟁 속에서 신뢰가 쌓이지 않겠나.”

- 복수노조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대 노총의 영역다툼이 본격화되는 것인가.
“전주버스 파업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파업을 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대리전인 양 말하는데 그건 틀린 얘기다. 이건 양대 노총의 영역다툼이 아니다. 현장의 노조간부가 잇속을 챙기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합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런 일들은 복수노조를 앞두고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대 노총이 ‘신사협정’을 맺어야 할 부분은 서로의 치부를 덮어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부의 곪아터진 상황을 수습하고 혁신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넘어 노동이 존중받는 시대로”

올해 발생한 첫 노사분규는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투쟁이었다.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견철폐를 주장하며 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김 위원장은 "간접고용이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심화하고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주장했다. 직업안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해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홍익대 청소용역이나 현대차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100점에 도전하는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간접고용 문제다. 정치권이 연일 복지담론을 제기하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간접고용 문제가 돼야 한다. 저임금이나 고용불안 문제도 물론 심각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사고 팔고, 부품화하고, 떠돌아다니게 만들고, ‘나는 어떤 존재인가’ 헷갈리게 하는 간접고용 문제만큼 야만적인 것은 없다.”

- ‘간접고용 철폐’ 구호 말고 정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직접고용의 확립은 노동시장의 기본질서이자 자본주의의 기초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자본주의가 붕괴하거나 봉건사회로 회귀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직업안정법 개악을 시도하면 이는 곧 정권 몰락의 전조가 될 것이다. 정부는 착각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조법 개악을 못 막았으니 직업안정법 개악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노조법은 일반 노동자들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타임오프에 대해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나. 하지만 직업안정법은 다르다. 전 국민을 비정규직화하겠다는, 간접고용이라는 야만적 고용형태를 확산하겠다는 정부에 맞서 민주노총은 결사항전할 것이다.
투쟁을 넘어 정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민주노총이 국민들을 위해 거듭나려면 진정성과 실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투쟁이나 성폭력 보고서 채택으로 대표되는 내부혁신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노총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 전달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은 것은 실력을 키우는 일이다. 노동·고용·산업적 차원의 대안을 내놓기 위해 3월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다시 문을 연다.”

- 민주노총이 제기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노동이 중심이 되고 사람이 우선인 사회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행복한 나라 아닌가. 이런 사회가 가능하려면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