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0일 사단법인 대한산업보건협회 최아무개(65) 회장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최 회장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1억4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일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대한 법인사무점검 결과를 비교적 자세하게 공개했다.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건강보호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대한 법인 사무점검을 실시해 법인운영상의 불법·부당사항을 다수 적발했다”며 “협회는 사단협회임에도 민법과 정관규정을 따르지 않고 임의로 다수의 무자격자를 사원으로 등록시켜 이들이 사원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수익금의 일부를 회장 임의로 임직원 성과금으로 지급하고, 법상 규정된 임원 변경등기와 재산상황·분사무소 설치등기도 지연 또는 누락시킨 점 등을 거론하며 “법인운영 관리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특히 최아무개 회장에서 대해 △2010년 5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모 오케스트라와 수의계약을 체결해 직원 복리후생비에서 무단으로 1억5천여만원을 연주회 공연비용으로 전용한 사실 △업무추진비를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점 등을 거론하면서 “사원총회 개최시 불참 사원의 의결권을 회장에게 일괄위임하도록 해 회장으로 재선임되는 등 법인을 독단적으로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 회장과 기획관리이사에 대해 해임을 권고했으나 협회는 최근까지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6일을 시무식을 개최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례적 법인사무점검 결과 공개

현행 민법에 따르면 비영리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 또는 재단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설립할 수 있다. 법인의 사무에 대한 검사와 감독은 주무관청이 하도록 돼 있다.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주무관청이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대한 법인 사무점검 결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하고 협회 회장을 형사고발조치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에서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한때 노동부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83년부터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몸담아 오다 2005년 비의사로는 최초로 협회장으로 추대돼 현재까지 임기를 이어 오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대한산업안전협회의 경우 노동부 출신들이 회장도 하고 요직에 많이 진출하는데, 대한산업보건협회는 그나마 노동부 출신이 적게 가는 편”이라며 “그것이 다 최 회장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대한산업안전협회는 엄현택 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엄 회장은 올해 1월1일자로 취임했다. 엄 회장은 노동부에서 국제협력관·서울지방노동청장·노사정책국장·산업안전보건국장 등을 지냈다.

엄 회장의 전임자였던 백일천 회장 역시 서울지방노동청장·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낸 노동부 공무원 출신이다.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대한산업협회 임원 7명 모두 노동부와 연관성을 가지는 인물”이라며 “이런 좋은 배경과 적극적인 영업행위로 인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업안전협회, 노동부 공무원 출신이 회장

강성천 의원이 당시 낸 자료에 의하면 2009년 8월 기준 안전인증 및 안전검사 위탁수수료의 경우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19억5천900만원이었던 반면, 민간 사단법인인 대한산업안전협회는 26억900만원에 달했다.

그렇다고 노동부와 대한산업안전협회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노동부는 2005년 12월 치러진 대한산업안전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본부 간부와 일선 지방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을 동원해 선거권자인 협회 간부들과 일부 대의원들에게 “특정 인물을 지지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현직 협회장이 노동부의 지원을 받은 관료 출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 노동부는 이듬해 3월부터 2주간 협회와 전국 지회 안전관리업무에 대한 점검을 벌였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대한산업안전협회에 위탁했던 영세사업장 안전관리 사업을 민간업체에 모두 넘기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올해도 반복됐다. 노동부는 지난달 21일 산업안전보건업무 위탁기관 변경 공고를 냈는데, 기존에 대한산업보건협회에 위탁했던 국소배기장치 안전검사 업무가 삭제됐다.

문제 있는 법인은 관리·감독 부실

한편에서는 노동부가 정작 문제가 있는 법인에 대해서는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석면 관련 교육과 연구사업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석면관리협회의 경우 2009년 5월 김아무개(63) 회장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과 공금횡령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7년부터 2008년 말까지 석면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석면교육을 해 오면서 학원을 설립하지 않고 수강자를 모집해 교육하고, 여기서 나온 협회 수입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혐의가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현재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협회는 2009년 협회 이사인 이아무개씨의 개인 명의로 학원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석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석면관리협회는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주요 석면 관련 연구용역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곳에서 연구용역을 계속 수행할 경우 연구의 질과 내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석면 관련 협회인 한국석면환경협회 역시 석면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혼합교육방식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석면해체제거관리자 및 석면조사자, 관리감독자 교육과정은 각각 법에 정해진 과목과 시간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각 과정을 1개의 교실에서 수강자를 모아놓고 합동교육을 실시했다. 협회의 공식기구인 이사회나 총회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가 주무관청으로서 사단법인에 대한 사무점검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노동부의 입맛에 따라 특정 법인에 대해서만 점검을 벌이고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노동부에 최근 3년간 노동부 소관 비영리법인 사무점검 결과에 대해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는 법인·단체의 경영상 비밀에 대한 사항으로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비공개 대상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언제 어느 기관에 대해 감독을 실시했는지, 목록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노동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특정 협회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드러내는 것은 누가 봐도 이례적인 일이다. 노동부의 투명한 관리·감독과 공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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