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손을 다시 들어줬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도급 활용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파기 환송심에서도 인정된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3부는 "사내하청에서 2년 일한 노동자는 원청업체인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돌려보낸 지 6개월 만이다.

대법원과 서울고법 행정3부의 판결 내용은 같다.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자동차 조립·생산작업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흐름생산 공정으로, 독립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과 거리가 멀다고 봤다. 원청업체에 배치된 하청업체의 반장·직장 같은 이른바 ‘현장대리인’의 지휘·감독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지휘·감독권을 가진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이다.

이로서 제조업체의 ‘도급과 파견’ 논란은 일단락 됐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흐름생산을 하는 제조업체는 사내하청 고용관행을 개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일부 공정에서 분리 배치하더라도 적법 도급이 될 수 없음도 분명해 졌다. 또 부분적인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사내하청업체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사내하청업체는 현대자동차의 결정사항을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법원이 잇따라 판결을 내려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경영계는 이에 불복한다고 하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며 정규직화를 요구하자 현대차는 어떤 태도를 보였나.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자’고 했지 않나. 그런데도 대법원 재상고와 헌법소원까지 불사한다는 현대차의 행보는 무모하기 그지없다. 대법원에 이어 파기환송심의 판결마저 뒤집겠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현대차는 이번 판결을 당사자인 최아무개씨에 국한된 일로 여기고 있다. 이번 사건은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1천명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낸 만큼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에게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때문에 현대차 울산·아산·전주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도 영향을 받는다. 이를 외면한다면 현대차는 법을 계속 어기겠다는 심보다. 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철퇴를 내린 사내하청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현대차는 이제라도 불법파견으로 규정된 사내하청 고용관행을 개선하는데 나서야 한다. 우선 법원 판결에 승복하고, 사건 당사자부터 정규직화해야 한다.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사내하청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고용관행을 개선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일부 노동자의 사내하청 업체로의 고용승계, 공장을 점거한 지도부에 대한 손해배상·징계 최소화 정도로 문제를 축소하거나 봉합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은 사내하도급 활용의 적법성을 유연하게 판단한다”며 불만을 드러낸 경영계도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조성해선 안 된다. 법원이 수 차례 같은 판결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모호한 선진국 사례를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태해결에 도움을 주긴커녕 갈등만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이런 갈등과 혼란은 고용노동부가 부채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제조업체 25곳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5곳의 사업장에서 불법파견을 적발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07년에 마련한 사업장 점검요령에 따라 실태점검을 실시한 결과라는 게 최근 밝혀졌다. 고용노동부는 더 이상 철지난 판단지침으로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 대법원에 이어 파기환송심에도 같은 판결내용을 유지한 만큼 고용노동부의 판단지침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실태조사를 원점에서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현재 국내 300명 이상 사업장 10곳 중 4곳이 사내하도급을 활용한다. 사내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만 32만5천932명이다. 통계만 보더라도 법원의 판결이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사업주들의 불법관행에는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한다면 갈등을 더 키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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