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 후 나타난 현상은 강성노조 와해와 친사용자 노조의 등장이었다. 우리 식으로 이른바 ‘어용노조’다.
 
일본에서는 어용노조가 확산되면서 노노 간 갈등이 확대되고, 노조 가입률도 줄었다. 사용자 지원을 받은 어용노조는 처음 소수에 불과했지만 점차 다수 노조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종전 노조는 와해되거나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이렇듯 노조운동 후퇴기에 도입된 복수노조 허용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오는 7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일본 사례와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용자측이 블랙리스트(성향분석 문건)를 작성해 비협조적인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고, 새 노조 설립을 불사하는 것이다.
 
한국동서발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겉과 속이 하얀 ‘배’, 겉과 속 색깔이 다른 ‘사과’, 겉과 속이 모두 빨간 ‘토마토’로 조합원 성향을 구분했다. 회사에 협조하면 배, 반대하면 토마토, 성향이 뚜렷하지 않으면 사과로 분류했다. 이 회사 노조원이 소속된 민주노총 발전노조에서 탈퇴하는 것에 동의하면 협조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회사측은 민주노총 탈퇴 목표를 세운 후 조합원 성향분석과 회유 그리고 탈퇴공작, 조합원 찬반투표를 밀어붙였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그러자 회사측은 반대표를 던진 노조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 친사용자노조 설립까지 불사했다. 노동부가 조합원 가입대상 중복을 이유로 새 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자, 새 노조는 취소소송까지 냈다. 회사측은 여기까지 예상하고 상황별 시나리오(문건)를 작성했고, 이를 인사노무자들에게 회람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동서발전과 같은 사례는 민간기업에서 먼저 나타났다. 노동계는 2009년 정리해고를 겪고 난 후 비해고자 중심으로 조합원 총회를 거쳐 새로 설립된 쌍용차노조도 이런 사례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조합원 총회를 거쳐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경주)·상신브레이크(대구)·대림자동차(창원)도 동일하게 분류한다. 이들 노조는 현재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특히 2009년 정리해고를 단행한 대림자동차는 해고자를 복직시키면서 새로운 집행부에 대한 태도와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대림자동차노조 새 집행부 출범에 회사측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나타났던 블랙리스트와 어용노조 설립이 다시 부활한 것은 심상치 않다. '인력감축을 둘러싼 노사갈등→민주노총 탈퇴→종전노조 와해→새 노조 설립'이라는 수순을 밟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 후 나타날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것도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금융노조와 같은 대표적인 산업별노조에서 이 같은 사례가 빈발할 수 있다. 금속노조는 이미 홍역을 앓고 있다. 발전노조도 5개 발전회사 직원으로 구성된 단일노조다.

조합원 총회와 새 노조 설립 과정에서 지배·개입한 한국동서발전의 행태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한국동서발전의 부당노동행위는 정부가 부채질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간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앞세워 공기업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질타해 왔다. 단체협약을 손질하지 못한 공공기관의 경우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줬다. 이러니 공공기관들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데 열을 올린 것 아닌가. 한국동서발전은 이런 방침을 충실히 따랐고, 이에 저항하는 발전노조의 해체와 무력화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한국동서발전의 빗나간 노무관리와 부당노동행위를 일벌백계로 바로잡아야 한다. 종전 노조를 무력화시키려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한국동서발전 회사 경영진과 인사노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7월 복수노조 허용으로 나타날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새 노조 설립 과정에 사용자측이 지배·개입하는 풍토가 복수노조 허용을 더 확산시킬 수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사례를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정신 또는 조합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 자주성 보장이 핵심이다. 7월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이런 취지가 실현되도록 노사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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