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구제역으로 난리다.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유행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토 전체가 가축들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살처분된 가축수만 140여만 마리다. 전체 가축 중 10%에 해당한다. 공무원과 군인들은 강추위에 맞서면서 구제역 방역작업을 하느라 생고생이다. 40여일 넘게 구제역사태가 진행되자 임신한 여성공무원 3명은 유산되거나 유산 위기에 처했다. 2명의 공무원은 과로로 순직했다.

이러다간 구제역으로 축산업이 붕괴된 대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대만은 지난 97년 구제역으로 36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다”며 “축산업이 붕괴돼 회복불능 상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확산되자 미소를 짓는 나라가 있다. 줄기차게 쇠고기 시장 완전개방을 요구해 온 미국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산 소갈비 수입이 57.7%나 늘었다. 같은 기간, 호주산 소갈비는 11.7% 는 데 반해 미국산 소갈비 수입은 폭증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가격도 급등했다.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는 미국산 갈비 덤핑판매를 하고 있다. 구제역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가격 급등, 대형마트의 덤핑판매로 축산 농가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축산업 붕괴라는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판국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뮤지컬을 관람했다. 청와대 참모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를 자랑했다. 가축이 죽어 낙담하는 농민이 늘고, 생고생하다 순직한 공무원이 나오는 판에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뮤지컬 관람을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연초부터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들의 주름살은 늘어만 간다. 생필품 가격이 폭등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종합병원 약값을 두 배로 인상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당초 감기와 같은 경증환자의 약값만 올리려던 방침을 바꿔 암환자와 같은 중증환자의 약값 인상도 포함시켰다. 물가가 올라 생활고을 겪는 노동자·서민은 이제 “아파도 그냥 견디는 것이 낫다”고 한숨을 쉰다. 암과 같은 중증에 걸리면 병원비와 약값 폭탄을 걱정해야 할 실정이다.

여기에 체불임금까지 눈덩이처럼 커졌다. 노동자라면 임금을 떼인 경험이 한 번 이상 있을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다. 마치 벼랑에 서 있는 느낌이다.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들의 증언이 그렇다. 이런 체불임금이 지난해 1조1천630억원을 기록했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만 27만6천417명에 달한다. 정부가 해마다 체불임금 청산 지도에 나서지만 획기적으로 줄지 않는다. 구제역이 불붙듯 확산되고 있는데 속수무책이었던 정부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뿐만 아니다. 노동자 10명 중 1명은 법으로 보장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 새해 벽두부터 해고라는 날벼락을 맞은 홍익대 청소노동자 170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월 75만원의 임금과 월 9천원의 밥값은 그들이 받은 돈의 전부다. 그들은 쥐꼬리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 꼬박 10시간을 일했다. 주 40시간 일하는 사업장의 올해 월 최저임금이 90만2천880원인 것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해고사태가 보름이 지났는데도 홍익대는 버티기로 일관한다. 최근 홍익대는 청소용역업체 선정을 위해 입찰공고를 했다.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벗어나려 할 뿐 해고사태의 책임은 모면하려는 모습이다.

해고사태는 영세 용역업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조선소인 한진중공업은 12일 부산 영도조선소 생산직 290명에 대해 해고 통보를 했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만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주고, 부산 영도조선소에서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는 살처분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청소노동자를 살처분한 홍익대에 대한 근로감독이나 시정조치에 나서지 않는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통보로 노사갈등이 촉발됐는데도 정부나 부산시는 뒷짐만 쥐고 있다.

최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에는 전국에서 온 택배가 쌓이고 있다고 한다. 농성에 필요한 지원물품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믿고 기댈 것은 이런 지지와 연대다. 엄동설한에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하고 있는 고령의 청소노동자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노동자, 가축을 잃고 실의에 빠진 농민들에 대한 위로와 연대 활동을 조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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