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현재 한국의 사회보험제도는 고용·산재보험 및 실업급여,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전 국민고용보험제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실업부조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회보험제도는 남성·정규직·생계부양자를 중심으로 설계한 제도다. 또한 사회보험제도는 완전고용사회 달성을 위한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목표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 과정에서 조직노동중심의 산별노조가 한 축이 돼 산별교섭구조를 형성했다.

 

사회보험제도는 ‘예측 가능한 빈곤’에 대처하는 성격을 가진다.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육아와 교육에 따른 비용, 질병 위험에 따른 비용, 실업에 따른 생계유지 비용, 주거의 안정성에 따른 비용, 은퇴 이후의 생계유지 비용 등이다. 이는 인간의 생애주기를 반영한 것으로 사람은 아동·청소년·청년·성인·노인의 단계를 거친다는 가정을 설정하고 있다.

 

제도의 기본 틀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다. 단적으로는 여성·비정규직·비(非)생계부양자는 사회보험제도 내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사회보험제도는 많은 발전과 보완을 거듭했다. 한국의 경우만 봐도 모든 법인(작업장 포함)에서 4대 보험 가입이 거의 의무화돼 있다. 국민연금도 개인가입자가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 때문에 사회보험제도가 가진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또한 ‘예측 가능한 빈곤’을 넘어서는 ‘새로운 빈곤’이 등장했다. 여러 설명이 가능하지만, ‘일하는 빈곤층’이라고 하는 불안정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빈곤·실업·불안정한 고용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사회보험제도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보험료라는 형식의 기여를 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설계 때문이다.

 

한국의 사회보험제도가 본래의 설정과 계획보다 부실한 것은 당연하다. 도입시기가 짧고 제도가 안착하기도 전에 일하는 빈곤층,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구조적 빈곤층 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에서조차 ‘예측 가능한 빈곤’에 대처하지 못했다.

 

위와 같은 제도의 기본 틀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과거 공장체제와 같은 대량고용과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조건, 고용 없는 성장, 자본의 급속한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사람의) 일자리 감소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상이다.

 

사회보험제도의 근간인 기여자의 임금노동 소득 역시 감소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보육과 같은 의제들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보험제도 현황

 

현재 한국의 사회보험제도들은 사각지대와 배제의 영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더 강화됐고 경제위기 국면이 이어지면서 기여자들의 보험금 납입률 자체가 급감하는 상황이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노동의 확산, 실업의 증가와 장기화, 영세 자영업의 증가와 파산 등의 이유로 점점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용자의 기여 회피와 임금삭감 압력 때문에 (가장 보험료가 낮은) 고용보험조차 가입돼 있지 못한 현실이다.

 

덤프기사·레미콘기사·골프장 경기보조원·간병인·철도매점 판매원·애니메이션 작가·학습지 교사·대리운전 기사·퀵서비스 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도 배제돼 있다. 이처럼 고용보험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자가 실직할 때 일시적으로 받는 실업급여는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뤄진다.

 

건강보험은 다른 사회보험제도에 비해 국민적 공감대가 많이 커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리병원 도입, 당연지정제 폐지와 같은 의료 사유화(민영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같은 대안적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진보적 보건의료계 일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건강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조세형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영국의 국가의료제공방식(NHS)과 같은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취약계층의 추가 부담을 완화하는 ‘보험료 감면제’다. 이는 부분적인 조세형 의료로의 전환이다.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보험제도들 역시 조세형으로의 전환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국민연금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장기적 재정악화가 가장 큰 난제다. 수혜자가 급증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임금노동자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연기금 운용에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당연히 연기금 운용에 있어서 참여·민주·투명의 원리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

 

사회보험제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단기적 정책으로 제안되는 것들이 있다. 전 국민고용보험제도와 실업부조가 있는데 이 역시 제한된 사람들에게 심사를 거쳐 한정된 기간 내에서만 시행되는 것이다.

 

사회보험제도 개선 방향

 

난제들이 많지만, 사회보험제도는 끊임없이 개선되고 발전해야 한다. 개선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노동시장에서 임금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현실화·제도화한다. 둘째, 불안정노동과 저임금을 보완하기 위해 의료·교육·주거·보육·노후 등의 사회서비스를 확대한다. 셋째, 기존의 사회보험제도에서 불안정노동계층을 포괄할 방안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배제의 영역을 최소화한다.

 

물론 이런 개선 방향이 단계적 과정은 아니다. 사회보험제도 확대만으로 불안정노동 계층의 사회안전망 확보는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현실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남성·정규직·대공장 중심으로 짜인 소득비례 방식의 사회보험 내에서의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보험제도에서 제외되는 불안정노동 계층을 위한 실업부조 도입이 필요하다.

 

조세형 기본복지로 전환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대안들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수탈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더라도 사회보험제도의 근본적 한계인 기여·임금노동 중심적 경향을 폐기할 순 없다. 전면적 재구성이 불가피하다.

 

기본소득 도입이 기본복지 확대과정이어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의 기본복지”는 현행 사회보험제도를 조세형 기본복지로 바꾸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기본복지와 함께 이뤄져야 온전한 의미이며 가능하다. 사회보험제도의 확대는 ‘복지체험’ 성격을 지닌다. 이미 만들어지고 체험자들이 분명한 복지제도는 없어지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기본복지로의 전환과 기본소득 도입은 ‘권리체험’이다.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의 기본복지 수립

조세형 기본복지 전환의 의미

 

기본소득 도입은 상당수 현금지급형 복지의 통·폐합을 전제한다. 보편적 복지는 모든 선별적 복지의 총합을 포함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된 사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제도는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자들 자체가 소멸한다. 반대로 기본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은 기본소득 도입과 함께 기본복지라는 사회서비스 보편화 과정과 함께 확대돼야 한다.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이 이에 속한다.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의 기본복지가 ‘보편적’ 기본소득의 부분급여에 포함된다는 것은 기본소득이 무상의료·무상교육·주거 공공성·무상보육·노후 보장 등을 전제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와 교육의 무상화를 위한 재정은 기본소득 계획에 포함되어야 하며, 주거권 보장 역시 토지 국유화에 준하는 조세 정책을 통해 - 곧 국유토지에 대한 사용료에 해당하는 높은 토지세 징수를 통해 - 함께 추진돼야 한다.

 

가입자납부를 통해 운영되는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의 ‘보험’ 성격의 사회보험제도는 온전히 조세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사회에서 이들은 독자적 현금 급여로서의 의미를 소실하며, 보편적 급여에 이중지원은 불필요하므로 폐지해도 된다.

 

사회서비스 탈(脫)시장화 투쟁을 병행해야

 

미래세대의 생존조건까지 파괴하는 공공부문 사유화 광풍 속에 사회의 공공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사람의 권리와 생존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회의 모든 ‘재화와 용역’을 공공적 가치로 재구성해야 한다. 복지와 사회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고 시장화를 저지하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본복지를 제도화·공유화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바우처 등 시장화된 복지전달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앞서 무상교육을 거론했다. 아무리 무상교육을 한들, 사학재단과 학원자본들의 권력을 근간에서 무너뜨리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 무상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병상 비율이 10% 선에 머무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무상의료는 의료시장 확대를 꾀하는 삼성생명과 같은 자본의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릴 것이다.

  

추가복지 필요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의 소득을 지급하고,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 등의 기본복지와 함께 가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 등의 특수한 조건을 가진 사회 구성원에 대한 추가복지가 필요하다.

 

추가복지는 장애인과 같이 특정한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회 구성원에게 욕구에 기반을 둔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추가복지는 (그것이 현금이든 현물이든) 장애인 전체의 월평균 추가비용 개념을 통해 일률적으로 장애등급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유형별로 월평균 추가비용 격차가 크다는 현실을 반영하여 시행돼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과 기본복지 확대를 통한 생계보장만으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주장의 현실적 의의

기본소득과 같은 급진적 주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2009년을 돌이켜보면 우울했던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용산학살, 쌍용자동차 대량 정리해고와 이명박 정부의 살인진압, 언론악법, 4대강 죽이기 삽질,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 노동기본권 후퇴와 노조법 개악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만 열거해도 숨이 찰 지경이다.

 

사회적 약자라 칭할 수 있는 집단과 부문이 급증했고, 관련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토건족 위주의 도시 재개발이 전국적으로 이뤄지면서 철거민이 속출하고,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대학생은 생체실험과 유흥업소를 전전해야 하고,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시장 진출로 영세 상인이 거리로 내몰리고, 쌀값 폭락으로 농민은 논을 갈아엎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환위기 10년 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뒤흔들었고, 자기 가치의 수만배가 넘는 거품을 키워온 자본은 앉은 자리에서 붕괴하고 있다. 이는 자본의 위기다. 하지만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서민들은 좀 살게 해달라고 경제를 외치지만, 그들은 서민들을 더 많이 착취하고 수탈하기 위해 경제를 외친다.

 

신자유주의 수탈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민주주의 일반가치들까지 갉아먹고 있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는 모든 시공간을 아우르며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더 나은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한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이라는 말은 실체없이 허무한 구호로 맴돌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사회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고, 물질적 독립을 획득할 때에만 주권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먼 미래의 이상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개선책과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급진적 주장은 사회적 약자의 힘을 키우고, 권리적 성격으로서의 요구가 된다. 무상교육 실현을 위해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무상교육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요구는 국민 대중의 강력한 힘을 만들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재원 마련의 현실성과 정당성

 

기본소득 재원은 그 규모가 방대하다. 1년 국가예산의 몇 배에 달하는 재정이 필요하다. 재원의 현실성 문제는 기본소득 논의 활성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있다. 기존의 사회복지 재정을 통·폐합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받는 액수에도 못 미치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므로, 기본소득 재원은 부자증세와 투기 불로소득 중과세를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

 

투기 불로소득 중과세의 핵심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소책자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토지세와 금융거래 과세다.

 

토지세는 부동산 소유 자체에 대해 보유세 개념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부동산 소유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수익을 넘는 세금을 부과해 부동산 가격을 크게 하락시키고, 택지를 점진적으로 국유화하는 것이 토지세 신설의 목적이다. 국유화된 택지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임대해 사용자들은 적정한 사용료를 세금방식으로 내며, 이 돈은 다시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된다. 기존에 택지가격이 높았던 지역은 높은 사용료가 책정된다.

 

금융거래 과세는 선물·옵션·펀드·주식 등의 파생상품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소책자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이익의 30%정도를 세금으로 징수해도 엄청난 재원이 마련된다. 지과세와 금융거래 과세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공격할 가장 강력한 무기다. 위기의 원인을 제거하고, 위기의 결과가 낳은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시장화하고, 공공재를 사유화하고 사영화하여 공공의 것을 수탈해 왔다. 이와 같은 특혜경제와 수탈경제는 기본소득과 의료·교육·주거·보육·노후에서의 기본복지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회적 기본권 체계로 수립될 때만 해소될 것이다.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을 마련한다. 이자·배당·지대에 대한 중과세는 턱없이 낮은 현행 세율을 최소한 OECD 평균수준으로 높이는 것과 함께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형성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체계 수립이 복지의 시장화 이전에 원래 공공의 것이었던 복지를 다시 공공의 것으로 되돌리는 행위라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 충당방식은 금융수탈에 대한 역수탈(逆收?)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한 조세와 재정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수탈경제를 제어하며 또한 강력한 소득재분배효과도 낳는다. 이는 금융 공공성에 입각한 통제 및 사회화 정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수탈경제를 극복하는 두 종류의 중요수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근본적으로 정치운동이며 계급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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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여성

조건 없이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는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부원장]

 

조건 없이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는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1)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기본소득은 여성이 공평한 기회와 평등한 결과를 획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별 노동 분업을 극복하는데 기본소득은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인가. 사회·직장·가정에서 오로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본소득이 성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얘기할 때 주목되는 것은 기본소득이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많은 사회보장제도가 ‘가족을 기준’으로 한 소득비례방식으로 보장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공적연금은 소득이 없는 사람은 ‘기여’를 할 수 없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단위로 묶여 소득이 있는 사람의 ‘부양가족’이 된다. 소득이 없는 사람의 몫으로는 가족이 있는 경우, 부양가족의 몫으로 플러스알파(매우 적은 금액)를 수급자에게 더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여럿이 가족을 구성하더라도 각 개인에게 지급되고, 혼자 살거나 혹은 수입이 있건 없건 조건 없이 지급된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 성평등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여성에게 경제적 자유를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8년 50%였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 임금노동자의 64.9%가 비정규직이다. 성별 임금 불평등을 보면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62.3%의 임금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남성 정규직의 39.1%의 임금을 받고 있다(김유선, 2009).

 

공적 연금 가입현황을 보면 2007년 기준으로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을 합해 여성은 남성 921만1천명의 절반 수준인 513만명만 가입해 있다.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여성이 전체의 35.4%(2007년)이고, 반대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여성이 전체 수급자의 57.5%로 84만7천40명에 달한다. 2009년 총가구 중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는 374만 9천 가구로 총가구의 22.2%를 차지하고 있다. 그 비율은 1980년 14.7%, 2000년 18.5%, 2009년 22.2%로 계속 증가 추세이나 이들에게 ‘생계부양자’로서의 임금이 지급되고 있지 않음은 남녀 임금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lgarte(2006)도 여성들이 무급노동과 돌봄노동 대부분을 하고 있고, 유급노동을 할 때조차 항상 적은 소득과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들이 늙었을 때, 그리고 싱글 맘이 되었을 때 대부분 가난하다는 것이 그렇게 놀랍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적 열악함은 더 나열할 것도 없이 심각한 상황인데 소득비례방식의 사회보장제도는 수많은 사각지대 특히 여성을 지독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한다. 비혼모의 경우를 보자.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이 비혼모의 현황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가끔 사회문제로서 지적될 뿐 이들을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나누고자 하는 관점과 태도로 접근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비(非)가시화되고 있는 비혼모는 그들의 처지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혼자서 책임지거나 시혜의 대상자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액의 기본소득이 매월 꾸준히 지급된다면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그들 아이의 삶은 또한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또 소득이 없는 여성들, 즉 부양가족으로 인식되며 온갖 무급의 가사노동,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들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경제적 자립의 어려움 때문에 매를 맞고 살아도,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홀로서기(이혼)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힘이 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에서 대다수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비자발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받아들이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는 괜찮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조차 하지 않는다면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도입돼 일정액의 수입이 꾸준히 보장된다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Elgarte(2006)는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의 일을 하며 이중고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여성에게 기본소득은 일하는 동안은 더 높거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의미 있는 연금을 보장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대부분 이중부담자를 대표할 뿐 아니라 수입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이들의 수입은 불안정하고, 자립적이지 못하며 연금이 없거나 다른 사회보장에 대한 권한이 없고, 대부분의 싱글 맘과 파트타임을 하는 기혼여성들이 포함됐다. 또한 Elgarte는 Pahl, Ott, Robeyns의 말을 빌려 가정에서 유급노동의 여성들이 무급의 여성들보다 목소리가 크다고 언급하면서 교육과 직업이 없이도 보장되는 수입은 가정에서 주부들의 목소리를 크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을 받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정 내에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열악한 조건과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혹은 무급의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또한 선택의 폭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인 복지제도라고 할 수 있다.

 

‘낙인’이 아니라 권리를

 

여성들의 이러한 경제적 상황은 이들을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비혼모의 여성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득이 없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여성들, 매 맞는 여성들, 가사 노동자나 간병노동자 등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비공식 부문의 여성노동자들, 이들은 현재의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사회나 혹은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시혜의 대상’이 되고,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된다.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은 이러한 여성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혹은 ‘특수한 상황’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구분을 하기 위해 자산조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삶을 낱낱이 파헤치지도 않는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는, 각종 부조를 포함해 자산조사라는 명목으로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러 가지 이름들과 처지를 일일이 분류를 해 놓고 도와줄지 말지를 선택한다.

 

그러한 이름과 분류는 적절하지 않을 뿐 더러 당사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인 잣대만을 들이댄다. 당사자의 자산만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자식·형제들의 자산까지 조사해 이를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 증명을 하는 것도 시혜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류상 부모는 있으나 서로 만난 지 오래돼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부모·자식·형제 간의 친밀도(?)까지 낱낱이 밝혀야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자산 조사 없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낙인도 없고,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낱낱이 파헤쳐 밝힐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이들에게는 더 유용한 그리고 더 절실한 수입원이 될 것이다. 보편적인 복지제도만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곳에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기본소득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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