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했던 경인년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저물어 가는 한 해가 아쉬워서인지 세밑이면 거리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가는 곳마다 떠들썩합니다. 본래 세밑은 ‘한 해의 어려운 관문의 통과’를 의미합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새 해를 맞이하는 시간, 그래서인지 세밑은 성찰의 시간입니다.

올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탓에 울고, 법원의 판결에 웃었던 한 해였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1월1일 새벽, 노조법을 직권상정해 단독 처리했습니다. 한나라당은 새해 벽두부터 노조법을 단독 처리를 하더니만 12월8일에는 내년 예산안마저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올해만큼 ‘날치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해도 없었습니다. 지난 5월1일 새벽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노동계 위원의 출입을 막고, 경영계와 공익위원만 참여해 타임오프 한도를 기습처리 했습니다. 타임오프제도는 현장 곳곳에서 갈등의 뇌관으로 부각됐습니다. 노동계는 종전 관행대로 노사자율 결정을 요구했고, 경영계는 타임오프 한도 준수를 고수했습니다. 정부는 새 제도 정착을 위해 사업장에 대해 수시로 점검하면서 ‘개입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북 구미의 KEC에서 타임오프를 두고 갈등이 폭발한 것입니다. 지난 5년간 무분규사업장이었던 KEC에서 파업과 직장폐쇄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노조가 공장점거에 나섰습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앞두고 노사는 농성해제와 교섭재개에 합의했으나 갈등의 불씨는 아직도 살아있는 듯합니다.

타임오프 시행으로 우울했던 노동계에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지난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KTX 여승무원, 현대차 울산에 이어 아산공장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은 1천5백일 넘게 싸웠던 기륭전자·동희오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복직합의로 이어졌습니다. 12월 들어서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300여명이 울산 1공장을 점거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했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정규직)와 현대차사내하청지회 간에 아름다운 연대가 이뤄졌습니다. 25일간 농성을 끝으로 현대차·협력업체·금속노조·현대차지부·사내하청지회가 특별교섭에 합의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타임오프 문제는 정부가 그렇게까지 서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임자임금을 자율적으로 정해 온 오랜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도전처럼 새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부는 타임오프제도가 산업현장에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대기업 사업장에서 노사 간 담합과 이면합의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은 노사정 누구나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타임오프제도는 노사의 이해도를 높이면서 연착륙시키는 것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우리 현실과 맞지 않거나 미흡한 타임오프제도에 대해서는 손질하는 것을 병행했어야 했습니다.

불법파견과 사내하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에서 잇따라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현대자동차는 대책없는 ‘버티기’로 일관하다 화를 불러왔습니다. 대부분의 대형 제조업체들도 비슷한 사정입니다. 이젠, 낡은 사내하청 고용의 관행을 바꾸는 일에 사용자가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따로 없습니다.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특히 현대차는 농성참가자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를 강행해 이제 막 시작된 평화교섭에 찬 물을 끼얹는 행위를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노·사·정 독자 여러분. 춥고 긴 겨울밤, 이웃과 동지팥죽 한 그릇을 나눠먹으면서 훈훈하게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 한 해,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원과 관심 덕분에 매일노동뉴스는 더 자랐습니다. 매일노동뉴스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올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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