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는 ‘대한민국 조선산업 1번지’로 불리운다. 전신은 대한조선공사다. 일제시절인 1937년에 그 역사가 시작됐다.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모태다. 주로 군용선이나 민간선박을 수리했다. 일제 말기에는 대형선박을 건조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해방 후에는 소유와 관리권이 미군정에 넘어갔다. 미군정은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반관반민 합작회사로 형태로 불하했다. (주)대한조선공사의 시작이다. 전쟁 후 선박 제조기반은 무너졌고, 이승만 대통령 측근이 잇따라 경영진으로 입성하면서 부패가 심각했다. 5.16 군사쿠테타 후에는 강제로 국영기업화 됐다가 1969년 다시 민영화됐다. 민영화 과정에서 해고에 반대해 본공과 임시공이 함께 파업을 벌였다. 군사정부는 국영기업 최초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민영화를 강행했다.

민영화 후 현재의 한진중공업으로 변신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조선소이자 중공업 신화를 연 회사로 꼽혔다. 한 때는 부산에서 고용을 가장 많이 하는 대표적 기업이었다. 현재는 르노 삼성자동차에 그 자리를 내줬다. 글로벌 경제위기 후 선박 수주에 어려움을 겪던 한진중공업은 최근 노조에 대규모 감원(400명) 계획을 통보했다. 이에 맞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지난 20일부터 전면파업 중이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이 노조에 감원계획을 통보한 시점이 묘하다. 경영실적이 악화돼 감원할 수밖에 없다던 한진중공업측은 최근 조남호 회장 일가에 대규모 주식배당을 했다. 대주주인 조남호 회장은 약 120억원,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국 상무는 약 80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한 손에 정리해고 계획서를, 한 손에는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주식배당 계획서를 들었던 셈이다.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과 달리 한진중공업은 올해 실적도 개선됐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 5천362억원에 영업이익 521억원을 기록했다. 주식자산가치는 올해 초 1천588억원에서 11월 현재 2천672억원으로 68.3%나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선 내년에 한진중공업이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다.

회사측이 해고하려는 인원의 평균연봉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조 회장 일가가 챙긴 주식배당금과 맞먹는다. 고통분담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해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이는 한진중공업의 해외생산 확대전략과 맞물려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6~2008년 약 7천억원을 투자해 필리핀 수빅자유지역에 조선소를 건립했다. 한진중공업은 수빅만조선소에 선박수주 물량을 몰아주는 형태로 투자비용을 회수하려 했다. 11월 말 현재 61척의 수주잔량과 29척의 신규 수주량을 고려하면 약 3년치의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했다. 필리핀 노동자의 임금은 국내 노동자 임금수준의 10%에 불과해 비용경쟁력도 갖췄다.

반면 한진중공업의 한국 내 조선사업장은 폐쇄와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했다. 한진중공업 울산 블록공장은 지난 7월 폐쇄됐고, 부산 다대포 블록공장은 부분 휴업 중이다. 인천 율도의 블록공장은 생산량 축소가 검토되고 있으며, 부산 영도조선소 도크 3개 중 1~2개는 폐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산 영도조선소의 수주실적은 지난해와 올해 전무하다.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물량이 빠져 나간 후 부산 영도조선소는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이러니 사업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해외생산 확대는 국내 공장의 감원과 비정규직 대체효과, 그리고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공동화로 나타날 게 분명하다. 노동조합이 국내 공장의 물량과 고용을 유지하기로 회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이 조차도 휴짓조각이 돼 버렸다. 노사 간 신사협정인 단체협약도 자본의 지리적 이동 앞에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문제는 정부나 부산시의 태도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한 기업의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불가피한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국내 조선산업 고용의 위기와 지역 공동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 조선소 중 STX조선도 중국의 다롄에 조선소를 건설했다. 한진중공업과 같이 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 조선업 빅 3인 현대·대우·삼성중공업도 해외에 블록공장을 경쟁적으로 세우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어난 해고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부산시는 영도조선소를 살릴 계획을 제시하되 회사측의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중단시켜야 한다. 노·사·정이 국내 조선업과 고용을 지키는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해외생산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에게 한진중공업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파업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지회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막 타오른 해외생산 확대의 불길을 끄지 못해 산업 전체로 번지게 할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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