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은 1923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대역 사건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없다. 박열은 잘 나가는 양반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가서 이런저런 단체에 가입하지만 드러난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다. 그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피해 숨었다가 보호 검속에 걸려 체포됐다. 일본 경찰은 박열에게 폭탄 구매계획을 듣고 천황 암살 음모사건으로 과장했다.부산 기장군 출신으로 일제 때 일본에 가 노동운동을 했던 김태엽씨가 1981년 출간한 회고록 ‘투쟁과 증언’(풀빛)엔 박열의 일본 유학생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1945년 8월15일 일본 패전 이후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까지 노동운동을 고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노동조합의 전국조직으로 존재했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출범과 활동이다. 따라서 전평의 결성, 행동강령, 주요 활동을 알아보자.전평의 결성전평은 1945년 8·15 직후인 9월25일 경성토건노조 사무실에서 사업장별 노조 대표들이 회동한 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칭) 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전평 결성과정으로 보면 산별노조가 결성된 후 이들 산별노조를 모체로 결성된
청년 두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형마트 카트 정리업무를 지원하러 간 29살 직원은 친구에게 “하루 만에 4만보를 걸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열사병으로 숨졌다. 한 아파트 승강기를 점검하던 27살 청년은 두 명이서 작업해야 할 일을 ‘나홀로 작업’ 끝에 “혼자선 못하겠어요”라는 문자를 동료에게 남긴 채, 8층 높이 위에 떠 있던 승강기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져 숨졌다.사업주가 조금이라도 안전보건환경에 신경썼더라면, 두 청년은 평소와 같이 퇴근하고 내일을 준비했을 것이다.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이 방송을 타면서 전 국민이 안
지난 10일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서를 읽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읽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냈다. 그런데 충남지노위는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노동안전 의제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엎었으니 뭔가 대단한 근거라도 고안해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정서에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말뿐
“사장님이 회사가 어렵다고 그만두라고 합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어서 그렇게 안 된다고 하네요. 사유를 적지 말고 사직서를 내야 퇴직금이랑 퇴사 처리를 해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죠?”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실직자들이 구직급여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재취업 기간 경제적 지원에 그 취지가 있는 구직급여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거나 자발적 이직 등 요건이 안 되면서도 사업주와 공모해 부정수급하는
자영업자 10명 중 3명(29.5%)은 여성이다. 여성 자영업자 10명 중 7명(76.7%)은 고용원 없이 홀로 일하고 있다. 자영업에 뛰어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본인의 비전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자발적인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 여성들은 임신·출산·육아·가족돌봄으로 인한 고용(경력)단절을 겪거나 가사노동·돌봄노동과 생계활동을 양립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또는 회사에서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겪는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용형태의 프리랜서도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시
전 정부와 현 정부가 노동정책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로서 느끼는 확연한 차이는 ‘형사사건의 증가’다. 그리고 집회·시위에 대한 ‘엄정 대처’. 물론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엄정 대처’의 신호탄은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금지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서 설정한 집회의 금지구역 중 하나가 ‘대통령 관저 100미터 이내’인데, 새로 옮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이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신고가 들어오는 대로 번번히 금지통고 했지만, 법원
최근 몇 달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미로 삼을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베이킹·우드버닝·책 보수·목공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해온 노동관계법과 관련된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주로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들이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매번 공통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의 계약관계는 어떨까, 내가 취소하면 강사의 소득에도 영향이 있겠지’ ‘인두나 오븐을 사용하다 화상을 입으면 학원에서 산재로 처리해 줄까’ 등 모든 사람들이 다 ‘노동자’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동환경을 생각했
1. 지난 9일 오전, 부고 문자를 거듭 읽었다. “[부고] 조임영 교수 별세”라는 문자메시지 제목을 봤을 때는 가족상인데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겨 다시 읽었다.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임영 교수께서 2023년 7월9일 일요일 오전 02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기에 아래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본문 내용까지 읽고서야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안타깝다. 솔직히 내 머리는 이 말밖에 떠올리지 못했다고 고백해야겠다. 한동안 멍했던 나는 겨우 안타깝다는 말 정도로 조임영 교수의 부고 소식에 반응하
전환기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존의 질서가 유효성을 상실해서 다른 질서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퇴하던 1974년에 고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펴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전환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에서는 ‘전환’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자신의 인식과 실천을 전환할 생각은 별반 없어 보인다.최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
혼돈과 끓는점“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2008년에 등장한 문구가 소환됐다. 광우병 소를 먹으면 뇌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는 공포를 자극한 이 문구는 15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논란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족관 짠물을 마시는 이벤트를 벌인 정치인들이 소환했다. 광우병 공포는 비과학적 선동의 결과였을까.인간은 위험을 감지하면 신호를 보내 종의 유지와 번식에 성공했다. 그래서 불안도 과학이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시위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바꿨고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시민의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나는 나름의 주관과 기준을 가지고 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법을 잘 안다는 점과 법률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이 됐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도무지 법으로 해결이 안 되고, 상식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슈를 만났다. 바로 플랫폼 기업과 그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간의 법률관계다.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권리와 의무는 관련 법령과 양 당사자가 작성한 계약서로 구체화 된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게임의 룰(rule), 즉 관련 법령과
미국 연방 대법원이 2018년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이번 판결은) 국가 안보를 가장한 혐오의 산물”이라며 다수의견을 낸 동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바마가 대법관에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엄격한 조사와 청문회, 상원 투표 끝에 2009년 건국 233년 만에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됐다.소니아의 어머니 셀리나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하게 일했다. 셀리나는 1944년 봄 태평양전쟁 중인 미 육군에 들어가 삶을 바꿨다. 종전
‘청년'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청년이 어떻다라고 사회적으로 뜨겁게 이야기가 나왔던 시기를 복기해 보면 2010년대 초가 떠오른다. 와 의 대 격돌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98년 외환위기로 ‘정상 가족’과 ‘정상 노동’ 해체를 경험하며 사회·경제·문화적 약자로서 청년을 호명했다. 이런 호명은 이태백, N포세대, 달관세대 등으로 발전해 나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트랜드 또는 브랜드로 상징화되거나 기존의 사회와 ‘부조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규정하고 ‘열정’을 요구하거
소득이 매년 새롭게 발생하고 소비되는 연중 기준 유량(flow)의 개념이라면 자산은 쌓이고 축적되는 연말 기준 저량(stock)의 개념이다. 개인과 가구의 소득과 자산은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통계로 작성되며, 국민소득과 순자산은 국민계정과 국민대차대조표에서 집계된다.지난해 7월 국민대차대조표에서 잠정집계된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순자산은 1경9천809조원이다. 명목 국민총소득(GDP) 2천72조원의 9.6배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토지자산이다. 부동산 자산이 1경6천873조원으로 국가 순자
“그렇다고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당대표 수락 연설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 말을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들었다. 충격이었다. 내 삶이 부끄러워졌고, 지난 삶을 되돌아봤으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했다.그렇게 2020년부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책담
“지침에서 식당 위치를 설명한 부분을 찾아봐요”“그건 지침에 없습니다”“그럼 기지에서 한 번도 밥을 안 먹었나요?”“아닙니다, 세 끼 다 먹습니다”“지침에 없는 식당 위치를 어떻게 압니까?”“시간이 되면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변호사들이 군인 의문사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려낸 법정 영화 의 법정 증인신문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검사는 상관의 가혹행위 지시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증인에게 가혹행위(Code Red)와 관련된 규정이 지침에 존재하는지 질문한다. 당연히 지침에 그런
1. 이 칼럼은 순전히 지난달 23일 세계일보에 게재된 칼럼에 대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노사관계 전문가 권순원 교수(숙명여대)의 칼럼 ‘노동조합은 이중구조를 완화하는가’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칼럼 하나를 특정해서 시비한다는 게 좀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칼럼을 쓴 교수는 분명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도 할 수 없다. 포털 뉴스를 검색하다가 내 PC화면에 떠오른 탓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대단하게 선별한 것은 결코 아
발단은 어쩌면 값싼 호기심이었다. 몇 년 전 한 연예인 관련 쏟아지는 보도를 접하며, 도대체 ‘텐프로’는 무엇이고 여기에 일하는 여성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스포츠신문의 선정적 보도를 시작으로 검색의 파도를 타고 가니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란 사회단체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내에도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면서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는 쪽과 성매매 여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강제 요인을 강조하는 이들 간 논쟁이 있다. 나는 제반 논쟁을 비롯해 성매매의 복잡한 구조를 판단할 지식도, 경험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짧은 지면이나마
다중이 이용하는 운송수단 중 오로지 버스만이 운전자가 고객을 직접 대면한다. 지하철과 비행기도 운전자가 승객을 마주칠 수는 있지만, 우연에 불과하다. 고객을 대면하는 빈도는 어느 운송수단도 버스를 따라올 수 없다. 모든 승객은 버스 운전직 노동자와 마주치며 요금을 지불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니 말이다.만남의 빈도가 잦은 만큼, 감정노동의 수위는 높아진다. 버스 노동자가 승객과 직접 대면하며 당하는 폭언과 욕설의 수위를 듣고 있자면, 이들의 일상생활까지 영향받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에게 “어이, 3명 찍어”(3명 탑승할